메릴 스트립│① 멈추지 않는 빛

2018.03.13 페이스북 트위터


‘더 포스트’로 메릴 스트립은 생애 21번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데뷔가 1977년에 있었으니 거의 한 해 걸러 후보에 오른 셈이다.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시상식장 관객석 맨 앞에 앉아 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광경이다.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올해의 여성 후보자들을 기립시켰을 때 메릴 스트립에게 먼저 호소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자와 수상자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 일어선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기립하게 되어 있다.

메릴 스트립은 현대 할리우드 명배우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지금 여기엔 경쟁자가 없다. 예전엔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가 호명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지금 메릴 스트립과 같은 경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연기 폭 역시 마찬가지다. 로버트 드 니로는 위대한 배우지만 코미디 연기는 평범하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에게 약점이 있는 분야는 그냥 없는 것 같다. ‘죽어야 사는 여자’의 코미디, ‘맘마미아’의 뮤지컬, 심지어 ‘리버 와일드’의 액션에 이르기까지, 스트립이 커버하는 영역은 광대하기 짝이 없으며 68세인 지금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메릴 스트립은 변신의 대가다. 일단 악센트 연기엔 따라갈 사람이 없다. 3개 국어를 구사하는 폴란드 여성을 연기했던 ‘소피의 선택', 영국 수상을 연기한 ‘철의 여인’, 덴마크 작가를 연기했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예는 끝도 없다. 심지어 메릴 스트립은 키까지 연기로 커버하는 것 같다. 그가 연기한 줄리아 차일드나 캐서린 그레이엄은 배우보다 훨씬 키가 큰 사람인데, 보다 보면 특수효과나 분장을 쓰지 않은 부분에서도 그 큰 느낌이 다가온다.

관객들은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배우들을 어느 정도 페티시화해서 감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일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버트 드 니로가 ‘택시 드라이버’를 찍기 위해 실제 택시운전사로 일했다느니,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의 왼발’을 찍을 때 쉬는 시간에도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느니, 크리스찬 베일이 모모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살을 몇 킬로 빼거나 찌웠다느니. 하지만 메릴 스트립과 이런 전설은 잘 맞지 않는다. 스트립은 캐릭터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과시적인 스턴트를 하지 않고 자기 몸을 필요 이상으로 학대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메소드를 뽐내지도 않는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지금도 힘을 잃지 않고 있는 건 반대로 이 배우가 어느 정도 중용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메릴 스트립이 명배우라는 사실은 비난의 표적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메릴 스트립이 지나치게 보여주는, 과시적인 연기를 한다고 비난한다. 분명 메릴 스트립은 은밀한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다. 우린 영화를 보는 동안 늘 그의 연기를 의식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가 그 혼자만은 아니다. 알 파치노, 잭 니콜슨, 크리스찬 베일,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은밀하게 영화에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던가? 오히려 배우의 에고는 이들의 연기에서 더 노골적으로 표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립의 연기를 깎아내리는 것으신의 취향이 대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괴상하다. 과연 메스트립이 남자였어도 같은 말을 들었을지 궁금하다. 이미 성별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된 배우인데도 어떻게든 사람들은 메릴 스트립에게서 ‘여배우’의 한계를 찾으려 한다. 오히려 메릴 스트립의 성별이 스테레오타입화된 명배우의 마초적 과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르는데.

‘더 포스트’에서 스트립의 존재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보라. 이 영화에는 분명 명연기의 순간이 있다. 배우가 실제로 알고 지냈던 실존 인물을 모방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진짜로 빛나는 부분은 다른 캐릭터들과 드라마 안에서 자신을 어울려내고 녹여내는 순간들이다. 그것은 프리마돈나의 연기가 아니며 그런 적도 없었다.
CREDIT 글 | 듀나(영화평론가)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