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 하는 삶

2018.03.05 페이스북 트위터


0.
책상 앞에 앉아 창문 밖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것을 본다. 꽤 강하게 불어제치는 바람 사이로 따뜻함을 품은 봄볕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각자의 녹색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생긴 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이맘때면 할머니는 나물을 캐러 바쁘게 돌아다녔다. 하루는 고모랑, 또 다른 날은 옆집 할머니랑. 뱀이 나올까 무서우면서도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며 캐 오는 것들은 쑥, 냉이, 그리고 씀바귀 같은 이른 봄의 나물이었다. 차가운 땅속에서 질긴 뿌리를 가지고 자라는 냉이가 흙의 냄새를 품은 채로 봉지에 담긴다. 아직은 갈색이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땅 위를 그나마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쑥이 신문지에 싸여 가방 속으로 향한다.

보드라운 여린 쑥 한 아름이 배낭에서 나와 펼쳐질 때의 향긋함, 이라는 것이 있다. 비닐과 신문지에 돌돌 싸여 가방 속에 응축되어 있던 향기가 사르르 방 안의 작은 부분을 메운다. 그 틈으로 코를 들이밀던 때를 떠올리면, 톡 쏘면서도 따뜻한 열감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나물을 뜯는 할머니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풀잎의 다발들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 있었다.

1.
작은 집에 살면서, 조그만 다육이를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커다란 잎사귀를 가진 화분을 들이기에는 공간이 부족했기에, 지름이 7~8센티 정도 되는 포트에 담긴 다육이를 들였다. 식재료를 제외하면 아무런 식물도 없던 방에, 조그만 잎을 가지고 흙 속에 심겨 있는 작고 통통한 초록. 시장과 길가의 어둡고 차가운 바닥에서는 쪼그라들고 그리 볼품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방 안에서는 조금씩 본래의 형태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이따금 욕실로 날라 물을 듬뿍 주면 자그마한 몇 개의 화분에서도 흙냄새가 올라왔다. 물을 준 다음 날 보면 잎이 반짝반짝하고 윤이 났다. 통통한 잎사귀들이 물을 머금고 조금 더 통통해진 모습으로 부풀어 있었는데, 그걸 들여다보는 순간에는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비워졌다. 두근두근대던 심장 박동과 호흡이 차분해지고, 둥둥 떠 있던 마음까지도 차를 마시는 순간처럼 가라앉는 것이었다. 광합성을 하고 수분을 흡수하는 바쁜 일정 중에도 그 어떠한 소음도 내지 않고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잎사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 드디어 내게도 차분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생겼다.

2.
‘식물생활’이라는 만화를 그리게 된 건 그 작은 기쁨을 알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식물생활’은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찾아가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토대로 그리는 웹툰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 무얼 해야 하지,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고 싶은데 어떤 걸 그려야 하지? 등의 고민을 하다가 식물로 눈이 향했다. ‘그래, 식물을 그려보자!’ 운 좋게도 주변에 식물을 좋아하고 기르는 사람들이 있어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에 준비해 간 열 개 남짓한 질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속해서 추가되었고, 식물과 관련된 기억을 나누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일도 잦았다.

식물을 기르는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만의 어떠한 계기가 생기고 난 후 식물을 들여다보고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모 혹은 조부모가 키우던 식물들에 대해 크게 관심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이들에게, 식물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순간들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나서야 식물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제야 왜 엄마가, 아빠가,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화분을 돌보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3.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강아지의 눈을 바라볼 때 그들이 주는 위안과 평화로움이 있다. 그렇지만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동물을 돌보며 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보다는 조금 가벼운 책임감을 요구하며 관리가 쉽고 조용한 식물을 길러보면 좋겠다. 또는 보기 좋고, 집 안을 꾸미기 위해서, 꽃이 피는 걸 보고 싶어서, 공기 정화를 위해서, 선물받은 것을 죽일 수 없어서 등등 각자의 목적으로 혹은 특별한 목적이 없더라도 식물을 돌보기를 권한다. 그 식물들이 곁에 있는 동안 돌보는 순간의 감정들이 어떤 기억들로 남겨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3년을 같이 사는 나의 작은 다육이들을 볼 때의 순간처럼, 푸른 잎사귀를 들여다보는 일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다. 

ps. 예쁜 식물을 키워볼까 싶다가도, 이번에도 실패할 거란 생각에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죽어간 식물의 상태를 떠올려보자. 당신이 물을 규칙적으로, 잘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어 나간 식물이 많다면 환기와 배수의 문제일 수 있다. 한 때 유행했던 시멘트 화분보다는 통기성이 좋은 토분에 심어진 식물을 길러보자. 반대로 잎이 바싹마싹 말라 죽어간 경우라면 보통  ‘관엽식물’이라 칭하는, 잎이 많고 얇은 대다수의 실내 식물보다는 물 빠짐이 좋은 흙에 심어진 ‘다육식물’이 맞을지 모른다. 
CREDIT 글 | 안난초(만화가)
사진 | 안난초(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