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여성 선수들이 가르쳐준 것들

2018.02.26 페이스북 트위터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번에 참가한 여성선수 비율은 42%로, 프랑스 ‘르몽드’에서는 ‘남녀평등 수준에서 역대 최고의 올림픽’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여성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한국의 여성선수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올림픽의 가치들을 모아봤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Facebook

압도적인 실력, 최민정

쇼트트랙에서 2관왕을 차지한 최민정은 첫 번째 경기였던 500m 결승에서 캐나다의 킴 부탱을 추월하던 중 손이 닿았다는 이유로 실격판정을 받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정작 최민정은 시합직후 인터뷰에서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결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며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손을 짚어서 실격이니 안 짚고 나가야겠다. 이제부터 꿀잼일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던 그는 이후 1500m 결승에서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 주행을 선택했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단숨에 1위를 차지했다. 안쪽에서 순위다툼을 하다 뒤엉켜 넘어지는 다른 선수들을 뒤로한 채. 쇼트트랙을 늘 따라다니는 판정시비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500m 실격 후 SNS에 남긴 ‘가던 길 마저 가자’라는 말처럼, 최민정은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길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Facebook

모든 것을 뛰어넘는 우정, 이상화

“몇 년 전 대회가 끝나고 경기장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우승자였던 이상화가 나와 함께 울어줬다”고 말했던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 나오는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가 관객석을 향해 인사를 건네던 중 울음을 터뜨리자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상화에게 “나는 널 여전히 존경해.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두 선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친구이자 가장 뛰어난 경쟁상대로서 함께 수많은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순위 경쟁을 넘어선 감동을 전달했다. 시상식에 앞서 함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하며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서로 좋아하는 한국음식과 일본음식을 이야기하기도 했던 두 선수의 우정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Facebook

포기하지 않는 희망, 민유라
한국선수로서는 16년 만에 아이스댄싱에 출전한 민유라가 파트너 알렉산더 겜린와 함께 훈련하기 위해서는 매년 20만 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스폰서가 없었고, 이 때문에 2016년부터 펀딩사이트 ‘고 펀드미’에서 모금활동을 하거나 도그시터나 스케이트 강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민유라는 이런 노력을 통해 결국 올림픽 무대에 섰고, 쇼트 프로그램을 시작하자마자 의상에 문제가 생겼지만 끝까지 연기를 마치는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한복을 입고 연기했던 프리프로그램 ‘아리랑’은 재미교포 2세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그의 의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코치와 심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이 곡에서 그는 혼신의 연기를 통해 자신이 그 곳에 있어야 했던 이유를 전달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그는 ‘흥유라’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누구보다도 올림픽을 즐겼고, 강아지를 좋아해서 도그시터를 하는 것마저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Facebook

주목하게 만드는 개성, 컬링대표팀

컬링대표팀은 비인기 종목이었던 컬링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이들은 마치 스포츠만화의 주인공처럼 강적들을 차례로 격파했고, 예선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일본팀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컬링대표팀에게는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개성이 있었다. 매서운 표정과 귀에 쏙쏙 박히는 경상도 사투리,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은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마저도 선수들의 입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특히 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큅 김은정의 경우 리더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새로운 여성 롤모델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안경을 쓰고,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한 표정을 한 여성의 모습이 TV에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비치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또한 이들은 모두 경북체육회 소속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비인기 종목에 매진해온 지역체육인들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Facebook

끝나지 않는 꿈, 김연아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자신의 오랜 염원이었던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에도, 김연아는 멈추지 않았다. 2011년 IOC 총회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연설을 했고, 유치가 확정된 이후 홍보대사로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 지난 정권으로 인한 각종 불미스러운 의혹들과 잡음에도 불구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이 외면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김연아의 이런 헌신과 열정 덕분이었다. 그리고 김연아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개막식을 위해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 대중들 앞에 등장했다. 변함없는 아름다움과 위엄을 보여준 그의 개막식 퍼포먼스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고,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이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다. 선수로서의 꿈을 이룬 뒤에도, 김연아의 꿈은 계속됐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선수들의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CREDIT 글 | 서지연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