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팬서│① 세상의 중심에 선 흑인 슈퍼히어로

2018.02.20 페이스북 트위터


* ‘블랙팬서’와 ‘아이언맨’ 1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이언맨’ 1편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이 돼 막대한 부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총수 자리를 지키는 이야기다. ‘블랙팬서’는 트찰라(채드윅 보스만)가 블랙팬서가 돼 막대한 부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와칸다의 왕 자리를 지키는 이야기다. 토니 스타크는 아버지의 오랜 사업 파트너에게 총수 자리를 위협받는다. 트찰라는 아버지 트차카(존 카니)로 인해 버림받은 사촌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에게 왕의 자리를 위협받는다. ‘아이언맨’의 마지막 씬에서, 위기를 극복한 토니 스타크는 기자회견에 선다. ‘블랙팬서’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도중, 트찰라는 UN에서 연설한다. 토니 스타크는 선언한다. “나는 아이언맨”이라고. 슈퍼히어로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던 토니 스타크의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이언맨’ 1편은 락스타 같은 인기를 누리는 유쾌하며 경박한 독설가이자 플레이보이의 이야기로 끝났다. 트찰라도 선언한다. ‘최빈국’으로 알려졌던 와칸다가 세상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정체를 숨긴 채 평화를 유지하던 와칸다가 세계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깨달은 트찰라의 결단이었다. 그래서 ‘블랙팬서’는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깨닫게 된 품위 있는 왕의 이야기로 끝난다.

이것이 지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흑인 슈퍼히어로가 필요한 이유다.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 스타크는 고민보다 농담을 더 많이 하는 슈퍼히어로였다. 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DC의 진지한 슈퍼히어로들과 다른 슈퍼 히어로의 등장이었다. 반면 트찰라는 도저히 토니 스타크처럼 살 수 없다. 와칸다 바깥에서 흑인은 백인에게 납치돼 노예로 살았다. 또는 백인이 수탈했던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와칸다가 스스로를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위장할 수 있는 슬픈 이유다. 트찰라는 마음먹으면 이런 흑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와칸다의 정체를 국제 사회에 공개해야 한다. 율리시스 클로(앤디 서키스)처럼 와칸다의 기술과 막대한 비브라늄을 노리는 일이 국가 단위로 벌어질 수도 있다. 그의 아버지처럼 외면할 수도 있다. 트차카는 와칸다 밖의 흑인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와칸다 바깥에서 흑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현실을 바라만 봐야 한다. 외면하지 않는다 해도 질문은 계속된다. 에릭 킬몽거는 와칸다의 첨단 무기를 전 세계 흑인들에게 제공하려 한다. 차별받는 존재가 폭력을 답으로 선택했을 때, 그것이 틀렸다고 설득할 방법은 무엇인가. 주인공이 아버지의 정신적, 물리적 유산을 물려받는 과정을 그린 슈퍼히어로 영화는 이제 흔하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슈퍼히어로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흑인 슈퍼히어로에게 이 모든 일은 뻔한 과정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트찰라에게 정체성의 기준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침략당한 적 없는 국가의 수호자로서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눈감는 것은 모순인가, 아닌가. ‘블랙팬서’는 백인 남자 슈퍼히어로들에게 수없이 주어졌던 슈퍼히어로의 탄생 서사에 흑인 주인공을 넣으면서, 지금 흑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를 끌어들였다. 그 결과 1편부터 슈퍼맨처럼 자신의 힘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배트맨처럼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슈퍼히어로가 탄생했다.

‘블랙팬서’를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면, 단지 정치적으로 공정해서가 아니다. 흑인의 정체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다루는 이 작품은, 시작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1960년대에 발표된 원작부터, 블랙팬서는 이미 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가의 왕인 슈퍼히어로였다. 그는 많은 흑인들과 다른 존재였고, 동시에 이웃 나라의 흑인들처럼 율리시스 클로 같은 침략자와 맞서야 한다. 부와 첨단 기술을 가진 흑인들의 나라의 왕이 주인공이다. 오직 웃음만을 위해 소비되는 수다스러운 흑인 캐릭터가 등장할 이유가 없다. 왕이 다른 나라의 흑인들이 겪는 차별을 안다. 또한 흑인의 나라가 백인의 국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평등에 신경 쓸 것이니, 여자가 무사든 과학자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인간과 세계에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 ‘블랙팬서’는 지금까지 백인 남자 슈퍼히어로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창조했다.

‘블랙팬서’는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밀어붙이지 못해서 아쉽다. 트찰라의 실제 상대는 에릭 킬몽거다. 그러나 ‘블랙팬서’는 영화 전반부 중 상당한 분량을 율리시스 클로와의 대립에 할애한다. 율리시스 클로를 잡는 과정을 통해 아직 단단하지 않은 트찰라의 왕권, 와칸다의 권력구도 및 인종문제에 대한 입장이 드러난다. 그만큼 ‘블랙팬서’는 트찰라의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세계를 천천히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핵심 스토리인 트찰라와 에릭 킬몽거의 대립은 오히려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한다. 와칸다를 위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트차카의 행동은 에릭 킬몽거에게 아버지와 고향을 앗아 갔다. 폭력을 통해 흑인을 해방시키자는 에릭 킬몽거의 입장은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입장은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와칸다 내에서도 와카비(다니엘 칼루야)처럼 그의 입장에 동조하는 권력자가 있다. 하지만 트찰라는 에릭 킬몽거가 던진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로 인해 한 사람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트찰라가 아버지의 입장에 반하는 뜻을 세우는 것은 슈퍼히어로이자 왕으로서의 사상이 정립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랙팬서’는 이 과정을 트찰라가 아버지에게 하는 다짐으로만 설명하고, 그에 이르는 고민의 과정을 최소화한다.

‘블랙팬서’에서 다루는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두 캐릭터를 동시에 등장시켜야 가능하다. 율리시스 클로는 아프리카를 수탈한 백인 침략자를 연상시킨다. 에릭 킬몽거는 그 침략자들로 인해 조상들이 노예로 살았고, 그 자신도 미국에서 차별 받고 있는 흑인이다. 율리시스 클로를 거쳐 에릭 킬몽거가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통해, ‘블랙팬서’는 미국내 흑인이 어디에서 왔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이야기는 더 나아갈 수 있는 곳에서 멈춘다. ‘블랙팬서’에 필요한 바탕을 마련하는 전반부는 느슨한 반면, 트찰라가 에릭 킬몽거와 대결하는 과정은 부족한 러닝타임만큼 성급하다. 같은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의 갈등이 트찰라의 귀환 후 액션으로만 마무리되면서, ‘블랙팬서’는 메시지와 이야기의 재미 모두 약해진다. 왜 와칸다는 복잡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는 왕의 자리를 무력 대결로만 결정하고, 왕정 국가라고는 하지만 왕이 결정하면 곧바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위험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베일에 가려진 왕정국가를 묘사할 때 쓰이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트찰라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변화 의지에 와칸다의 정치에 관한 부분이 조금만 들어갔어도 ‘블랙팬서’는 또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블랙팬서’에는 흑인 슈퍼히어로 영화로서 관객을 고려한 익숙하고 안전한 설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지른 것 같은 시도가 섞여 있다. 그 점에서 마블의 ‘퍼스트 어벤져’와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저’, 또는 DC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사이의 어디쯤 같기도 하다. 슈퍼히어로의 첫 등장을 설명하면서 그의 정체성과 세상의 문제에 대해 발언한다. 그 점이 이 영화를 더 독특하지만, 조금은 애매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팬서’의 마지막 씬은 흑인이 슈퍼히어로인 영화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흑인 아이는 트찰라에게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 트찰라는 대답하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대답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블랙팬서’는 미국 내 흑인에게 정신적인 고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상들은 지금 살고 있는 땅에 노예로 끌려왔고, 지금 그들은 백인과 동일한 ‘미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조차 없는 운명을 뒤집어쓴 사람들. 에릭 킬몽거가 가본 적 없는 와칸다를 원하는 이유다. 그에게 그곳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그래서 트찰라가 UN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은 정말로 중요하다. 흑인 슈퍼히어로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도 10년 만이다. 아직 흑인 이외의 소수 인종은 이 우주의 주인공이 될 기회도 얻지 못했고, 백인이라도 여성은 개봉 예정인 ‘캡틴 마블’에서야 주인공이 됐다. 이런 세상에서 흑인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인공으로, 그것도 아웃사이더가 아닌 왕으로서 농담 한마디 하지 않는 연설을 한다. 와칸다는 현실에 없다. 그러나 흑인, 특히 미국의 흑인에게 ‘블랙팬서’는 흑인이 꿈꿀 수 있는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클로즈업 된 트찰라의 얼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형상화한 얼굴이다. ‘블랙팬서’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설정과 ‘떡밥’에 대한 흥미를 넘어 슈퍼히어로가 탄생한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슈퍼히어로가 현실의 희망이 되는 것. 그렇게 슈퍼히어로가 아이들의 꿈이 된 이유가 돌아왔다. 

‘블랙팬서’에 이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다. 슈퍼히어로와 엄청난 힘을 가진 외계 생명체의 대결은 그 자체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블랙팬서’에서 트찰라는 모든 흑인들을 자신의 동포로 여기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사람이 가족, 국가, 민족, 더 나아가 같은 인종의 문제를 걱정하며 연대의 범위를 넓힌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역시 각자 다른 입장의 슈퍼히어로들이 공통의 적을 향해 힘을 합쳐야 한다. ‘블랙팬서’가 전달한 메시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다.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세운다.”는 트찰라의 말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에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니버스의 역사는 각자 다른 슈퍼히어로들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서로의 세계에 다리를 놓는 과정이었다. 지구와 아스가르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세상에서 이제야 흑인 남자에게까지만 주인공의 자리를 내줬다는 것은 여전히 이상하지만. 계속 다리를 만들며 모두가 이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와칸다가 없는 이 지구-1218에서도.
CREDIT 글 | 강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