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가 또

2018.02.07 페이스북 트위터


2018년 그래미 시상식을 이야기할 때, 브루노 마스를 빼놓기는 어렵다. 올해의 앨범/노래/레코드를 모두 석권한 것도 드문 기록이고, 올해의 노래와 레코드를 각기 다른 노래로 받은 것은 더욱 드문 기록이다. R&B 아티스트로서 올해의 앨범을 받은 것은 스티비 원더, 퀸시 존스, 나탈리 콜, 레이 찰스 이후 5번째에 불과하다. 한 해에 6개 혹은 그 이상의 트로피를 차지한 것은 역사상 9번째에 해당한다. 이 역사적 결과를 비웃은 많은 사람들이 따로 밝힌 바와 같이, 브루노 마스는 죄가 없다. 90년대 이후 취향을 냉동 보관한 그래미에게 ‘24K Magic’이 ‘24K’처럼 소중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한다.

물론 모든 시상식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 ‘DAMN.’이나 ‘4:44’, 혹은 ‘Melodrama’보다 ‘24K Magic’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제이-지가 맨 앞자리에서 수시로 카메라에 잡히다가 빈손으로 집에 가면 좀 이상하다. 로드는 올해의 앨범 후보이면서 자신의 노래로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면, 더 많이 이상하다. ‘Homemade Dynamite’나 ‘Liability’ 무대를 보고 싶은 게 과한 욕심인가? 2018년 시상식에서 ‘Englishman in New York’에 ‘Don’t Cry for Me Argentina’까지 보았는데? 총기 사고 희생자를 기린다는 큰 뜻 앞에서 누구도 강하게 지적하지 않지만, ‘Tears in Heaven’은 어떤가.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시상식, 정확히는 최근 세상만사에서 인종과 성별은 가장 강력한 이슈다. 카밀라 카베요가 이민자였던 부모의 사연과 자신의 ‘꿈’을 말했을 때, 자넬 모네가 ‘#Time’s Up’을 말하며 케샤를 소개했을 때, 그리고 케샤가 동료들과 함께 ‘Praying’을 불렀을 때, 그래미는 이 순간의 정치를 불러냈다. 그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Fire and Fury’를 낭독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등장하는 것은 차라리 유흥에 가깝다. 그래서 그래미 특유의 낡음이 더욱 도드라진다. 세상에서 ‘Ageism’이 득세하고 나이 든 것만으로 따로 평가받는 것의 부당함을 말할 때, 그래미는 홀로 그 반대이거나 최소한 음악계의 변화한 지형을 인정하지 않는 기묘한 보수성을 보인다. 로드가 주요 부문 후보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그 때문에 무대 퍼포먼스 배정에서 톰 패티 헌정무대를 강요받았다고 생각하면 억측인가? 작년 가장 중요한 트랙인 ‘Bodak Yellow’의 주인공 카디 비는 브루노 마스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운영의 보수성이 대다수 시청층을 고려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수많은 시상식에서 선보인 레이디 가가의 ‘Joanne’과 ‘Million Reasons’ 퍼포먼스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라디오 친화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좋은 선택이다. 국내 실황 중계에서 스팅의 ‘지하철 카라오케’를 보며 ‘대가의 도량’을 논하는 것을 보니 틀린 해석이 아님을 확신한다. 스팅은 새 앨범 홍보하러 나왔을 뿐이다. 이 특이한 보수성이 음악 장르라는 문제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유명하다. 힙합이 주요 부문 후보 중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막상 수상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올해 극에 달했다. 세상에 완벽은 없고, 표의 분산 가능성을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허비 행콕에게 밀려났던 2008년의 카니예 웨스트에게도 한번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인종, 성별의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익숙함에 대한 맹종마저 보인다.

때때로 이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인데, 올해는 칼리드, 릴 우지 버트, 스자를 제치고 알레시아 카라에게 주는 식이다. 아마 투표인단들 대다수도 그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다만 후보 중에 가장 덜 불편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종/성별의 문제를 떠나 특정 취향을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백인/남성 중심의 투표인단 구성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애초에 그런 구성이 사실인지 밝힌 적도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놀랄 것 없는 상황의 반복 앞에서, 그래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수장, 닐 포트나우가 여성 아티스트 비율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 좀 더 노력하라는 ‘Step Up’ 발언을 내놓고 난리가 난 것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급히 내놓은 사과와 향후 대책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여성 중역들이 보낸 공개 서한에서 명백히 밝힌 바와 같이, 그는 ‘해결책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지금과 같다면, 2020년대에도 그래미가 지금과 같은 권위를 가질까?
CREDIT 글 | 서성덕(음악 칼럼니스트)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