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이 라인│① 뭉쳐서 살았다

2018.01.30 페이스북 트위터


VIVO TV ‘판벌려’는 김신영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그는 송은이에게 “선배님, 저 좀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TDC로 뮤직비디오 찍는 거 어때요?”라고 말했고, 송은이는 못한다고 하면서도 곧바로 ‘판’을 마련했다. 이들이 결성한 셀럽파이브는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뿐 아니라 MBC MUSIC ‘쇼! 챔피언’ 무대에 올랐고, 2월에는 MBC every1 ‘주간아이돌’에 출연하게 됐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해온 송은이가 그 주변의 개그맨 동료들까지 주목받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경규 라인’이나 ‘유재석 사단’처럼, 유독 예능계에서는 톱스타를 필두로 한 인맥이 부각되곤 했다. ‘예능 대부’라고 불리는 이경규는 강호동, 김구라를 비롯한 많은 후배들을 버라이어티로 이끌었고, 유재석은 KBS ‘해피투게더3’ ‘전설의 조동아리-내 노래를 불러줘’에서 ‘조동아리’라는 모임을 결성할 만큼 친한 선배들과 함께하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종영한 KBS ‘용띠클럽-철부지 브로망스’는 1976년생 동갑내기 가수와 배우들로 구성된 친목 모임 ‘용띠클럽’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계의 인간관계를 소재로, 그 인맥에 얽혀 있는 이들에게 캐스팅 기회까지 주는 것은 예를 일일이 들기 어려울 만큼 흔한 일이다. 연예계,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라인’은 절대로 웃자고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이 ‘라인’을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예능인은 배제된다. 물론 ‘라인’을 만들어서 그것이 능력의 여부에 상관없이 캐스팅까지 연결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송은이가 만들어낸 ‘라인’은 혜택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기회가 없어서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는 쪽이다. 송은이와 김숙이 출연했던 유일한 여성 중심 버라이어티 쇼 MBC every1 ‘무한걸스’는 2013년 종영됐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은 송은이가 일이 없어 방송을 그만두려던 김숙에게 “우리가 직접 하고 싶은 방송을 하자”(‘한겨레’)며 2015년에 시작한 것이다. 김숙은 2016년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해 “송은이 씨가 일이 없어서 적성검사를 했다. 사무직이 나와서 43살의 나이에 엑셀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7년 김숙이 출연했던 On Style ‘뜨거운 사이다’의 첫 번째 이슈는 ‘여성 중심 예능 부재 시대’였고, 출연자들은 현재 제작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익숙한 남성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러한 기존의 구조에 여성들을 끼워 맞추는 것에서 오는 괴리, 그리고 기본적으로 남성 성비가 높은 예능 제작 환경 등을 문제로 꼽았다. ‘라인’은 어떤 예능인이든 가지면 좋은 것이 아니라, 남성 예능인들 위주의 TV 예능 프로그램을 고착화시키는 요소에 가깝다. 여성 예능인은 ‘라인’을 만들 만한 프로그램 자체가 없다. 그래서 자력갱생을 위해 모여서 몇 개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라인’으로 불린다.

그래서 ‘송은이 라인’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인 그 ‘라인’의 의미와 ‘송은이 라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송은이가 팟캐스트로 기획해 큰 성공을 거둔 뒤 지상파로 진출한 KBS ‘김생민의 영수증’의 마지막 게스트는 셀럽파이브의 멤버인 신봉선이었다. 그 전 주에는 안영미와 김신영이 출연했다. 그것이 ‘송은이 라인’으로 득을 봤다면 본 전부다. 새삼 ‘송은이 라인’이 주목받는다고 해서 이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폭 늘어나지는 않았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오히려 송은이가 얼마나 뛰어난 기획자인지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그는 자신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을 만들었고, 거기서 파생된 여러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연예인들을 불러들였다. 정말로 ‘송은이 라인’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애초에 송은이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주목받을 일도 없었다.

다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셀럽파이브의 뮤직비디오는 업로드된 지 4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만 회를 넘어섰다. 약 2년 전 올린 VIVO TV ‘개국 티저’의 조회 수는 1만 회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송은이가 만든 VIVO TV에는 1분 남짓한 길이로 편집된 ‘레전드 영상’이 가득하다. 한 개그맨이 자구책으로 만든 콘텐츠들은 이제 현재 예능의 자구책처럼 보인다. 어쩌면 ‘송은이 라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을 상징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훨씬 넓은 ‘판’을 연 시작점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CREDIT 글 | 서지연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