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① 진짜 판타지

2018.01.23 페이스북 트위터


tvN ‘윤식당 2’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푸른 하늘과 높지 않은 건물이 알록달록 어우러지고, 이국적인 자갈길을 따라 다다른 ‘윤식당’은 마을 사람들이 한번쯤 기웃거릴 정도로 아기자기하다. 주방에서는 관록이 느껴지는 여성 오너 셰프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보조 셰프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한국의 음식을 만들고, 흰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남성들은 깍듯하면서도 다정하게 손님들을 맞이한다. 어딘지 범상치 않은 이들을 자꾸만 훔쳐보는 외국인 손님들의 모습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일상로망판타지’는 ‘윤식당’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추구해온 콘셉트다. 나영석 PD와 ‘윤식당’을 공동 연출한 이진주 PD는 기획의도에 대해 “프로그램이 끝나면 휴양지로 짧게 휴가를 갔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으로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몇 개월이라도 작은 가게라도 하면서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스타뉴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윤식당 1’은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여행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촬영됐고, 출연자들은 처음 접해보는 식당일에 당황하면서도 점차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섬’의 일상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방송 초반에는 섬에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멀미약을 붙이거나 하루아침에 식당이 철거되는 모습 등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윤식당 2’에서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곧바로 스페인 테네리페 섬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식당은 완벽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출연자들을 기다리고 있고, 윤회장과 이전무, 윰과장으로 승진한 이들은 시즌 1처럼 긴장하기보다 식당을 열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 나간다. 북적거리는 휴양지가 아닌, 골목 한 편에 자리 잡은 식당.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스콜이나 정전 사태가 없어진 ‘윤식당 2’는 좀 더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다. 마을 사람들의 미사시간을 체크하거나 여가 시간에 인근의 소문난 젤라또 가게를 찾아가는 것처럼.

여행지가 일상의 풍경처럼 그려지는 대신, 일상적이지 않은 출연자들의 관계는 ‘윤식당 2’의 보다 강력한 판타지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이 식당의 중심은 70대 여성이자 50년이 넘는 경력의 배우 윤여정이고, 그는 ‘사장님 마음대로’라는 슬로건 아래 식당의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사안까지 모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또 다른 여성인 정유미는 윤여정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주방을 차질 없이 돌아가도록 지휘하고, 주방 바깥의 일들은 이서진과 박서준이 발 빠르게 해결한다. ‘윤식당 2’에서 첫 손님인 덴마크 부부의 음식이 나갔을 때 윤여정은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손님들을 바라보던 시즌 1과 달리, 직접 나서서 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먹는 방법을 시연했다. 그의 곁에는 이서진과 박서준이 서 있었고 제작진은 그의 모습을 ‘좌서진 우서준 대동’이라는 자막으로 표현했다. ‘잘 가르쳐 사장자리를 물려 줄’ 정유미가 윤여정의 후계자 같은 역할로 그려지는 반면, 이서진과 박서준은 두 여성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이서진은 끊임없이 신 메뉴를 제안하지만, 사장이라는 윤여정의 역할을 절대 넘지 않고 무슨 일이든 그와 상의하며 허락을 구한다. 앞서 나영석 PD는 tvN ‘꽃보다 누나’에서도 여성 선배와 남성 후배의 관계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 87년생인 이승기는 84년도에 면허를 딴 김희애에게 운전에 대한 조언을 하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윤식당’에서는 이러한 남성들의 맨스플레인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시즌 1의 알바생 신구의 후임으로 등장한 박서준은 보다 직접적으로 ‘윤식당’에서 요구되는 남성의 역할을 보여준다. 다른 출연자들보다 한참 선배였던 신구와는 달리, 경력도 나이도 가장 적은 박서준은 좀 더 적극적으로 윤여정과 정유미의 일을 돕는다. 또한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손님에게 다가가거나 정유미를 동생처럼 따르는 모습은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윤식당의 손님들’ 역시 또 다른 판타지를 보여준다. 시즌 1부터 시즌 2까지 윤식당의 외국인 손님들은 아무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했고, 특히 젊은 커플부터 노부부까지 남녀 손님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는 흔한 여행지의 풍경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있는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가 될 만큼 희귀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지난해 방영된 ‘윤식당 1’의 마지막 회 시청률은 12.962%(TNMS 기준)를 기록했다. 이 중 전체 시청자의 15.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집단은 40대 여성 시청자들이었다. 그리고 약 1년 후 방영을 시작한 ‘윤식당 2’는 현실보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며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여정은 ‘윤식당 1’ 8화에서 발리에서의 촬영을 마친 소감에 대해 “드라마를 찍은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가 써 준 게 아니고 우리끼리. 그래서 너무 좋았고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 실재하는 인물들이 드라마에서나 존재할법한 아름다운 풍경과 서사 속에서 생생하게 움직인다. 리얼리티 쇼 안에서 구축한, 여성들이 보기 편한 판타지의 등장이다.
CREDIT 글 | 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