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과거의 파괴

2017.12.21 페이스북 트위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야기다. 긴 공백이 지난 뒤에야 나올 수 있었던 시퀄 시리즈의 이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한 작품이 짊어지기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관객들이든 제작사든 이 신작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처럼 역대급 명작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와 의욕으로 부풀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개봉과 함께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는 90%, 관객 지수는 50% 대라는 초유의 양극단을 달리며 역대급은 역대급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시퀄 시리즈에 실망한 관객들은 크게 루크 스카이워커를 필두로 하는 클래식 시리즈의 주인공 3인방이나 카일로 렌을 비롯한 새 악역들이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스 베이더의 외손자이자 레아 오르가나와 한 솔로의 아들이면서 루크 스카이워커의 제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줄줄이 달고 있는 카일로 렌은 악다구니만 쓰는, 이른바중2병’ 환자에 그쳤고, 이 찌질한 악의 탄생은 과거의 영웅들이 그를 가르치는데 실패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다. 시퀄 시리즈까지 한 솔로가 겪은 일들을 무리하게나마 현실 정치에 빗대어 보자. 온갖 희생 끝에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혁명에 성공했으나 안정적인 정권 교체에는 실패하고 기존의 보수 정권이 새롭게 부활해 다시 득세한 와중 정권 재탈환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자식만은 잘 키워보겠다고 한의학과 기 치료를 공부한 처남이 대안학교를 세웠다기에 보내놓았더니 정작 자식은 종교 및 철학을 왜곡해 받아들이고 비뚤어진 역사 인식의 네오나치에 넷우익에 인터넷 트롤이 되어 폭식투쟁과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참가하는 방식으로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몇 가지 키워드를 다듬기는 해야겠지만 이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재앙이기도 하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미국의 신화이자 종교다. 이런 상황에서 신화와 종교의 고삐를 쥔 이들이 공화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로만 만든다면 그야말로 불경한 짓일 것이다. 레아 오르가나와 한 솔로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는 전설이자 한 세대의 투영이었다. 이제 그들이 대표하는 세대의 주인공들은 누려야 할 영광이 아닌 다음 세대에 대한 채무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이 고민에 대해 요다의 입을 빌어 다음 세대의 토양이 되는 것은 모든 스승이 겪을 운명이라 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대로 과거의 영웅들이 쌓아올린 모든 유산이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할 폐허만을 남겼다.

이 작품은 스타워즈 시리즈가 기존에 소비되었던 방식에서 벗어나길 반복한다. 주인공의 증표나 다름없던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라이트 세이버는 두 동강이 났고 전통적으로 적 기지에 몰래 침투해 시스템을 마비시키던 저항군의 특공작전 시퀀스는 무참히 실패로 끝나며 제다이의 이상과 시스의 규율은 다음 세대에 이어지지 않거나 부정된다. 디테일한 함대전이나 라이트 세이버의 검식과 같은 설정적 요소보다는 인물간의 드라마에 무게중심이 옮겨졌고 이 드라마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서사가 아닌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서사로 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내용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기존의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 이후에 가야할 노선을 정립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영웅 서사의 3부작 중 많은 작품이 ‘아버지-되기’에서 ‘아버지-부수기’를 지나 ‘나-되기’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작법에서의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가상의 세계관을 다룰 때 필연에 가까운 공식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공이 선인들의 뒤를 밟아가며 그 세계에 대해 배우고, 배움이 완성되면 그들의 한계를 깨닫고, 한계를 깨달으면 이를 수용하거나 초월하여 진정한 자신이 된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버지 같은 제다이가 되길 원했던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과 다스 베이더야말로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깨닫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인 과정은 이 공식의 가장 모범적인 예시였다. 

불교의 용어 수파리, 즉 스승의 모범을 따르는 수(守)와 그 규범을 부수는 파(破)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리(離)의 세 과정에 빗대어 말하자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이 중 두 번째 단계, 파(破)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두 번째 단계의 작품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사람들을 돌아버리게 만들고는 했다. ‘다크 나이트’나 ‘신조협려’ 그리고 ‘에반게리온: 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선례를 깨부수고 부정하고 뒤엎는 이 작품들이 시리즈 안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쉬운 위치에 놓인 덕분이다. 이런 기능에만 국한한다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파破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다. 

파(破)의 단계에 해당하는 서사는 리(離)의 과정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질문은 질문으로 그치지 않고 답으로 이어져야 한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조차 개봉 당시 무슨 이런 내용이 다 있냐며 논란을 불렀다. 그럼에도 만인이 인정하는 걸작으로 되새겨질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작품이 마련한 토대 위에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으로 3부작의 서사를 흠결 없이 마무리한 덕분도 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평가 또한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 작품이 부정하고 무너뜨린 폐허 위에 어떤 무언가를 새로이 세우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쉬이 짐작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 모든 것이 가능해졌으니까.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에서 시골 소년에 불과했던 루크 스카이워커는 노을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갈망했다. 그는 그의 스승들에게 나는 할 수 있다고, 하겠다고, 하고 싶다고, 못하더라도 해야만 한다고 항변했다. 그는 그의 믿음대로 은하계를 구해냈다. 누구보다도 강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것으로 이룬 업적이었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 그의 업적은 풍화되었다. 이제 그는 누군가를 용서한다고도, 구원한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미안하다고, 네가 나를 무너뜨려도 네 곁을 지키겠다 말한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성취했기 때문에, 강하기 때문에, 구원했기 때문에, 용서했기 때문에 영웅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영웅으로 남고자 했기에 용서와 구원과 강함 그리고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이제 그의 뒤로는 그가 할 수 있다고, 하라고, 하고 싶지 않느냐고, 못한다면 내가 대신 하겠다고 설득하는 누군가 또한 나타났다. 그는 그 누군가에게, 그의 마지막 제자에게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만을 남긴다. 저무는 세대가 떠오르는 세대에게 건넬 유산은 라이트세이버나 검술 따위가 아닌 이 용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는 이 귀한 유산을 전해 받은 다음 세대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갈지 기도하고 기대하는 일만 남았다.
CREDIT 글 | d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