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모험 가득한 항해

2017.12.07 페이스북 트위터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기묘한 이야기’는 1983년 미국 인디애나 주의 호킨스를 배경으로 하는 SF 미스터리 드라마다. 작중 호킨스는 지난 4년간 있었던 끔찍한 일이라고는 올빼미가 행인의 머리를 자기 둥지로 착각해 공격한 해프닝이 전부인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중학생 소년 윌 바이어스가 실종되면서 전례 없는 소동의 무대가 된다. 그리고 호킨스 중학교 시청각부 부원들은 어른들 몰래 친구를 찾기 위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일레븐을 만나게 된다. 사라진 소년과 쫓기는 소녀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시청각부 부원들은 이세계의 괴물과 비밀 연구기관의 음모에 얽히고 만다.

얼핏 어두침침하기만 할 것 같은 도입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위기는 시청각부 부원들 특유의 넉살과 유머로 적지 않은 활기를 띤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TRPG 모임을 갖고 마을의 지명을 ‘반지의 제왕’ 속 지명으로 고쳐 부르는 너드들이다. 작중 자조적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기묘한 이야기’의 주요 사건들은 80년대 스티븐 킹의 소설이나 스필버그의 영화 속 장면들을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으니, 그들이 겪는 시련들은 동경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계기와도 같은, 악의적으로 말해 꿈같은 상황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 너드 친화적 서사에 대해 “뭐야, 또 찌질한 미국 너드 남자애들이 떼 지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야?”라고 흘려보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억지 레트로 감성의 괴작들과 과거에나 잘나갔던 시리즈의 리메이크작들이 너무나도 많이 쏟아지고 있는 이 판국에 질린 사람도 많을 테고, 평생에 걸쳐 찌질한 미국 너드 남자애들이 떼 지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에 발달 과정을 의탁해온 사람이라면 애착인형마냥 이런 서사를 놓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격지심마저 갖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너드에 친화적이기는 할지언정 편향적이지는 않다. 기존의 너드 친화적 서사에서 소년들이 찌질함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그들을 인정하지 않은 이들이 추락하는 광경을 사뭇 즐기던 모습과 달리 이 작품은 보다 성숙한 태도를 견지한다. 호킨슨 중학교 시청각부의 부원들은 유치하게 굴 때도 있고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지만, 인물에 과몰입한 창작자가 만들어준 편의적 전개를 통한 면죄부를 얻지도 않고 밑도 끝도 없는 자학으로 변명을 대신하지도 않는다. 이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지만 반성과 화해를 하는 법도, 성장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아픔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있다.

호킨스 중학교 시청각부 부원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언더독이거나 아웃사이더일지는 모르지만 비굴하지는 않다. 이런 장르에서 흔히 주인공들을 괴롭히다 참혹하게 죽기나 하던 조연 악역들조차도,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성장의 주체로 발돋움한다. 이 건강한 기조는 작품 안의 안이한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나 수습이 가능할까 염려되는 복선의 난무 등 여러 단점들이 드러나더라도 다음 시즌에는 달라지리라 기대할 만큼의 신뢰와 연결된다.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코스믹 호러의 핵심은 미약한 개인의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와 마주함에서 오는 숭고한 공포다. 이제까지의 인식 기준을 무너뜨리는 동요 속에서 경외감마저 느끼도록 만드는 그러한 공포 말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와 괴물들 역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처럼 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이, 마주한 인간을 숭고한 공포 속에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미지의 순간들은 시청각부 부원들에게 있어 작중 대사처럼 “호기심의 바다에 배를 띄운” 것에 불과하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저 “항해를 위해-덕질이라는 이름의-노가 필요할” 뿐이다. 이들은 뒤집힌 세계라는 이차원을 찾기 위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인용한 질문으로 과학 선생의 조언을 받아 감각차단 탱크를 만들고 시청각부 비장의 자산인 최신형 아마추어 무선통신기기를 활용하는, 저 혼돈의 바다를 멋지게 헤쳐 나가는 베테랑 선원들이다. 그리고 시청각부 부원들의 모험 가득한 항해를 한껏 응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아이들의 지식과 서브컬처를 향한 열정이 어떤 종류의 기만 없이 그저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 dcdc
CREDIT 글 | dcdc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