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로 나미에, 언제나 올곧던 J-POP의 여왕

2017.12.01 페이스북 트위터


내가 중학생일 적에,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J-POP 열풍이 아주 잠깐 불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아무로 나미에를 처음 접했다. 우타다 히카루, 하마사키 아유미와 함께 J-POP의 3대 가희로 불렸던 그는 J-POP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한번은 들어줘야 하는 가수였다. 그 전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부터 일본 음악계는 현재 아무로 나미에란 대 여가수가 장악하고 있고, 길거리에는 그처럼 꾸민 여성들이 가득하며 경제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뉴스가 몇 번 나왔었으니까. 때는 2000년대 초, 아무로 나미에는 모친의 사망과 이혼 등의 사건을 겪었고 음악 스타일을 힙합으로 바꾸면서 영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POP의 여왕’이라 불리던 그는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가수였다. 판매량이 부진해도 그 사실은 변치 않았다.

그리고 2004년 7월, 아무로 나미에가 다시 일어섰다. 발라드 싱글인 ‘ALL FOR YOU’가 10만 장이 팔린 것이다. 이전에 작업했던 음악과 비슷해서 많이 팔린 거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힙합 스타일을 고수한 앨범 ‘Queen of Hip-Pop’이 오리콘 차트 2위를 차지하자 그 말은 쏙 들어갔다. 사실 아무로 나미에의 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인기의 최고 정점을 찍어봤던 사람이니만큼 여론과 판매량을 의식해서 예전처럼 대중 지향적인 음악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로 나미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계속 걸어갔고, 마침내 대중들은 그의 뒤를 알아서 따랐다.

일본 가요계에서 활약했던 25년 동안 아무로 나미에는 언제나 그랬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했다. 타협할 수도 있는 순간마다 타협하지 않았다. 오키나와 출신인 아무로 나미에는 1999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쳐 공식적인 국가 행사에서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했다. 1999년에 있었던 행사는 아키히토 덴노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고, 2000년에 있었던 행사는 G8 정상회담이었지만 그는 부르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데뷔 20주년인 2012년에는 데뷔일인 9월 16일에 맞추어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기념 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태풍 산바가 상륙하면서 9월 16일에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날짜를 미룰 수도 있었지만, 아무로 나미에는 데뷔일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라이브를 취소했다. 이후 5년 뒤인 2017년 9월 16일, 아무로 나미에는 5년 전의 일을 만회하기 위한 오키나와 공연을 개최했다.

물론 늘 당당한 행보를 보여 왔다고 해서 그에게 괴로움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의 공백기를 거친 뒤 1998년 12월 홍백가합전에서 첫 복귀무대를 가진 아무로 나미에는 ‘CAN YOU CELEBRATE?'를 열창하다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때의 시청률은 68.4%였으며 순간 시청률은 80%에 육박했다. 역대 가수별 시청률 1위였지만, 그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가수가 되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던 모친이 재혼 상대의 동생에게 살해당했다. 스스로 ‘지옥까지 떠밀렸다’고 표현할 만큼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그는 연예계 은퇴까지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대신 팔에 어머니의 기일과 아들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다시 일어서서 전설을 써내려갔다. 이런 행보들을 보아왔기에 아무로 나미에는 항상 연예계 위에서 J-POP의 여왕으로서 강림하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발표는 뜻밖이었고 충격이었다. 지난 9월 20일, 아무로 나미에는 자신의 데뷔 날짜에 맞추어 2018년 9월 16일에 맞추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없을, 늘 올곧았던 J-POP의 여왕이 왕좌를 떠난다. 앞으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니 아쉽게 느껴진다. J-POP의 팬인 나로서는 그의 노래에 많은 청춘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적이 없던 그였기에 나름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결정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로 나미에가 거쳐 왔던 인생, 그리고 앞으로 거쳐 갈 인생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CREDIT 글 | 백설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