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폭력 대처하기

2017.11.20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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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를 중심으로 일을 한다고 알려지면서 유사한 사건들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방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이런 일들을 당한 피해자들은 형사고소 등 법률 절차를 따지기에 앞서 당장 회사에서 상대방과 일을 함께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특히 요즘 들어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비슷한 사건들이 있다. 세세한 사정이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얼개가 비슷하다. 직장 동료 간에 업무가 끝나고 따로 술을 마셨는데, 이후 상대가 돌변해서 ‘봉변’을 당했다는 식이다. 봉변의 종류에는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뜨니 숙박업소였고 성관계를 한 것 같다는 경우, 술을 많이 마신 후 갑자기 사랑 고백 같은 것을 하면서 진한 스킨십을 해오는 경우, 모텔로 데려가서 방까지만 데려가 달라고 해놓고 방 안이나 복도에서 추행이나 강간을 하는 경우 등이 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회사에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을 겪고, 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막상 회사에 이야기를 했다가 도리어 불륜이나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받아 함께 징계를 받을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뒤늦게 변호사를 찾아 자신에게 발생한 일이 직장 내 성희롱인지, 회사에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일인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친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사소통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의율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법리 간에 존재하는 차이다.

예를 들어보자. 같은 업무를 하는 인접 부서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있다. 둘 다 결혼을 한 사람들인데 근무 후에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하게 되었다. 둘 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황에서 한 사람은 인근 모텔을 잡아 자고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택시를 타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모텔에서 자고 가겠다고 한 사람이 돌아가겠다는 사람에게 술이 많이 취했으니 방까지만 데려다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모텔 안으로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자고 가겠다던 일방이 가겠다는 일방을 강제로 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얼결에 이런 일을 겪은 일방은 그 사람을 밀어내고 모텔을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이후 피해자는 회사에 이를 알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가해자는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안에서 서로 원해서 방에 들어가기 전에 키스를 나누고 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회사는 경찰 신고 결과를 보고 징계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정작 수사기관에서는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모텔 CCTV를 까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팔짱을 끼고 모텔 안에 들어서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 상황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가 된 것인데, 정작 회사는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두 사람을 모두 풍기문란으로, 같은 수위로 징계했다. 입증할 순 없어도 징계를 받은 후 피해자가 회사 안에서 겪은 흉흉한 소문의 피해를 받았을 것은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은 특별한 사람에게, 그리고 희귀한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어울려 일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친하게 지낸다고 하는 노력들 안에서 벌어지기 쉬운 일들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술을 마시거나 술에 취한 동료를 모텔에 데려다주었다거나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들에 업무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가해자가 상사라 하더라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서 의율받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이런 점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성폭력 사안에서 양자 간의 주장이 엇갈릴 때 그 앞뒤의 정황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 없이 숙박업소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나 이후 별문제 없이 나오는 모습은, 만약 그 안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면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는 데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히 믿고 있는 것들과 법률에서 의율되는 차이를 감안하여 피하고 싶은 자리는 어떻게든 고사하는 것이 예방에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가 직접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직장 내의 성도덕이나 성예절, 직원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그르치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또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회사에 이를 이로써 문제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이를 두고 직장 내 성희롱으로서 사업주가 그에 상응하는 사용자 책임을 이행해줄 것을 바라다 보면 직장과 불신이 생긴다. 피해자가 요구해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잘 바라보고 조직이 해야 하고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요구하는 정보와 운용이 필요하다.

한편 회사들은 직원들 간에 벌어지는 성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세를 취한다. 그리고 마치 수사기관이나 법정이 정하는 것과 동일한 선에서 문제를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회사는 법 위반의 범주보다 넓은 사회적 도덕적 비난의 범주를 고민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최근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서 가해자에게는 철저하게 단죄와 반성이 이뤄져야 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지만, 그 전에 회사 스스로 진일보하는 역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CREDIT 글 | 이은의(변호사)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