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관람가’, 이것이 영화다

2017.11.17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현장을 TV 예능으로 승화해보려는 노력들은 십수 년 전부터 있었다. OCN에서 만들었던 ‘오씨네 영화잡기’도 있었고, 무한도전에서도 영화 현장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JTBC의 ‘전체관람가’는 그런 모든 시도를 압도하는 본격적 영화 메이킹 프로그램이고, 단순히 영화 현장을 보여주는 재미를 넘어서는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도 해봤고, 현장에서 영화도 만들었던 나로서는 더욱 찬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감독들은 원래 장애물이 많은 환경에 익숙하다. 한국 영화계가 그렇다. 상업 영화는 물론이고, 독립 영화라고 별다를 게 없다. ‘전체 관람가’에 출연한 감독들은 모두 그런 한계를 몸소 체험해본 이들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에 비해 투자 금액은 언제나 턱없이 모자란다. 제약은 단순히 돈뿐이 아니다.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를 모실 수 없는 제약, 정말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를 제작 라인이나 투자 라인에서 거절하는 제약, 필살의 소재를 찾았지만 투자처에서 관심 없어 하는 제약, 개봉일이 정해져 있는 시간적 제약…. 이 수많은 제약들이 주는 압박의 재미를 ‘전체관람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제작비를 주고 마음대로 영화를 찍어보게 하는’ 아이템이라면 예능적 재미를 줄 수 없다. 짧은 제작 기간, TV 방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해지는 수위, 그리고 턱없이 적어 보이는 제작비까지. 감독들은 오히려 이 제약 때문에 더욱 평소에 그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예능적 재미를 선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 2, 정윤철 감독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메이킹 부분. 감독은 3000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야 하는 단편영화의 조연으로 오달수, 이정재, 박해일 등 조금은 허무맹랑해 보이는 네임밸류의 연기자 이름을 던진다. 민첩한 MC 김구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저런 건 막 던지는 거예요”라는 스튜디오 멘트를 날린다. 이것은 ‘전체관람가’가 얼마나 명민하게 만들어진 콘텐츠인지를 증명하는 순간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 영화감독들의 가장 즐거운 시절이 바로 저 타이밍이다. 대본이 완성되고, 투자 유치 혹은 캐스팅을 위해 ‘가상의 캐스팅’을 하는 시퀀스. 감독들은 평소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연기자는 물론 세상이 말하는 ‘대박 배우들’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해 가상 캐스팅 명단을 스텝들과 함께 만든다. 영화사의 회의실에서 가장 많은 웃음꽃이 필 때다. 사실 이 부분은 예의 ‘제약’ 때문에 더 큰 웃음잔치를 선사한다. 우리 제작비에 그렇게 많은 개런티를 필요로 하는 배우가 올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바쁜 배우가 이렇게 급한 스케줄에 맞춰 줄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막 던져보는 배우들의 이름이라는 예능 포인트를 포착하는 제작진의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방송 자체의 예능적 감각과 한국 영화계가 지니고 있는 예능적 감각이 합체해 포텐을 터뜨린 에피소드는 바로 4화였다. 평소 영화계에서 남다른 캐릭터로 유명한 이원석 감독의 단편 작업이다. 이원석 감독은 단편 뮤지컬 영화를 준비하면서 범상치 않은 캐스팅을 준비했다. 바로 ‘으리’의 사나이 김보성, 그리고 ‘띵’작 ‘클레멘타인’의 주인공 이동준이다. 사실 김보성과 이동준은 인터넷의 밈(meme)이 만들어낸 스타들이다. 이러한 인터넷 밈은 다채널화된 TV 방송들과 긴밀하게 연계해왔다. 하지만 이원석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수를 더 던졌다. 바로 ‘충무로 시대’부터 한국 영화계의 전설로 자리 잡고 있는, 선수들만의 이야깃거리, 바로 남기남 감독이다. 6일 만에 장편영화 한 편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빨리 찍기의 달인. 그냥 빨리 찍는 것이 아니라 ‘몰아 찍기’를 비롯한 온갖 잡다하면서도 절묘한 노하우를 보여준 바로 그 노장을 직접 카메라 앞에 모시고, 그 기술을 전수받는 그 장면은 앞서 말한 대로 방송과 영화의 예능적 측면이 조우해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스튜디오 토크의 발군은 단연 문소리였다. 사실 김구라와 윤종신은 이런 스튜디오 토크쇼의 달인들이다. 남성 MC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여성을, 그리고 예능인들 사이에 영화인을 포진시키는 뻔한 전략처럼 보였지만 문소리는 특유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영화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베테랑 배우로서의 위상을 보여줬다.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멘트들 하나하나가 문소리가 아니었으면 안 될 것들이었고,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영화적 순간을 핀셋으로 집어내 시청자들에게 적절히 노출시켰다.

사실 상업 영화 현장은 방송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삭막한 곳이긴 하다. ‘흥행의 부담이 없는’ 작업이라는 이유로 치열함보다는 작업 자체를 충실히 즐기는 모습이 훨씬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출연한 감독들이 워낙 오랜 경력을 지녔고, 많은 이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들이기 때문에 ‘재능기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인데, 저 정도 규모의 예산을 지닌 영화들이 모두 그렇게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임금 노동을 일상화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말의 소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 때문에 낭만적이고 가치 없다는 평가를 내릴 순 없다. 결국 그 작업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전체관람가’의 메이킹 부분에서도 간혹 드러나긴 했지만 영화 현장에서 예능적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소재는 연출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슬레이트를 친 후 막내는 카메라의 앵글에서 벗어나 어디로 숨을 것인가, 동시녹음을 위해 붐마이크를 들고 있는 붐 기사는 어디에 위치해야 화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배우들과 가장 가까이 마이크를 위치시킬 수 있는가, 밥차가 올라올 수 없어 도저히 식사를 진행하기 힘든 오지에서 제작부는 식사 진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관람가’의 시즌2 혹은 스핀오프로 그런 영화 현장의 잔재미들을 포착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청 중 이렇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대단한 확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앞으로도 여러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 과연 거장 이명세 감독은 어떤 작품으로 존재감을 보여줄 것인지, 다른 감독들의 현장에서는 또 어떤 돌발 상황이 등장해 시청자들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경험하지 못한 영화적 순간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될 것인지 회가 거듭될수록 기대가 점점 커진다.
CREDIT 글 | 조원희(영화감독)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