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민한’ 삶에 관하여

2017.11.08 페이스북 트위터


김생민의 아버지는 두 딸과 막내 아들이 많이 배우기를 바랐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자식의 교육에 투자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김생민은 그것이 미안했고, 어떻게든 돈을 모았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약간의 대출을 끼고 집을 마련했을 때였다. 그러나 집을 사자 통장 잔고는 0이 됐고, 다시 또 돈을 모았다. 모으는 방법은 절약뿐이었다.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는 돈을 아껴서 점점 집을 넓혔다. 돈을 모으는 것 외에 취향이나 취미는 없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바쁘게 사느라 기사식당에서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맛있는 식당은 1년에 두어 번 친구 따라 가면 충분하다고도 했다. 대신 그렇게 돈을 모아 산 집에서 가족이 편안하면 행복하다.

김생민은 1973년에 태어났다. 하지만 김생민의 삶의 궤적은 그의 아버지 세대를 연상시킨다.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사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개인의 삶과 취향보다 가족의 안정이 우선이다. 그러나 김생민은 아버지 세대의 많은 남자들처럼 자신을 가부장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생계를 책임지느라 힘들고 소외된 자신을 연민해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그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족에 대해 말했다. 그의 수입과 지출은 모두 아내와 상의한 결과고, 맛있는 것은 아이부터 먹인다.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그는 결혼 전과 달리 아내와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생민은 자신을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 놓고, 돈은 동반자인 아내와 상의하며 벌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술자리에서 밤 11시 20분이 넘어 한 잔 더 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절약에도 필요하지만, 아내와의 관계에도 좋은 일이다. 김생민은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공유하되, 가족 구성원에게 보다 친화적이며 평등한 태도로 다가선다. 그 점에서 김생민은 가족을 꾸려나가는 그 또래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돈을 버느라 취향은 포기한다. 하지만 살 집이 있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낸다. 그것이 지금 한국에서 평균적인 소득과 가족제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그림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구라가 MBC ‘라디오스타’에서 김생민에 대해 무례한 농담을 던졌다가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필연적인 순간이었다. 김구라는 먹고살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며 인기를 얻었다. 반면 김생민은 리포터로서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과 잘 지내야 했다. 김구라는 인기를 얻은 뒤 그것을 과시하는 모습을 캐릭터 삼아 게스트의 사생활도 거침없이 건드렸다. 이것은 현재 한국 중년 남자의 어떤 유형을 연상시킨다. 성공하지 못했던 남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갑’의 위치에 서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김생민은 아내도 그가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영수증을 보고 조언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영수증을 보낸 사람의 소비생활에 따라 ‘그뤠잇’과 ‘스투핏’을 날리는 그의 진행 방식은 자칫하면 타인의 취향과 사생활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생민이 다른 이의 취향이나 일상에 대해 무지하거나 잘못 짚으면, 공동 진행자인 김숙과 송은이가 그것을 바로잡는다. 한국에서 중년 남자가 일상에서 조금 더 돈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면서, 여성 진행자들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최근 미디어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에게 문화적 취향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욜로’와 ‘영포티’처럼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보다 젊은 감각을 따라가고, 뚜렷한 문화적 취향을 갖는 것이 곧 중년 남성이 이른바 ‘아재’와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처럼 묘사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가장 주목받는 예능인은 취향을 포기한 김생민이다. 취향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취향을 포기한 채 돈을 모아 가족을 꾸려나가는 김생민의 모습은 또래의 중년 남자들에게도 감정이입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년 남자가 취향 없이 돈만 아끼고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김생민은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자신이 모르는 영역의 취향에 대해 종종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도 함께 보여준다. 여기에 필요할 때는 두 여성 진행자가 단점을 보완해준다. 그만큼 타인과 대화가 가능하고, 여자와 함께 일할 때도 좋은 호흡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는 아내와 상의해 돈을 아끼고,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과 칭찬을 반복했다. 이것은 결혼한 남자를 다루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싶다면, 취향 이전에 바뀌어야 할 삶의 태도가 있다. 미디어가 이 변화에 주목하지 못한 사이, 두 명의 여자 예능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로부터 김생민이 떠올랐다.

물론 시대는 계속 변할 것이다. 최근 ‘김생민의 영수증’에 사연을 보낸 청취자는 자신을 월 190만원을 버는 31세의 남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모아 몇 년 사이 1억을 저축하고 싶다고 했다. 김생민은 이 청취자의 영수증을 분석하며 다양한 조언을 했지만, 이 청취자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그는 월급을 아예 한 푼도 쓰지 말아야 한다. 기적적으로 돈을 모았다 해도 그사이 집값은 더욱 오를 것이다. 김생민은 그래도 취향을 포기하고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30대 초반,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대다수가 애초에 부모의 지원이 없으면 돈을 모을 만큼의 소득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렵다. 사연을 보낸 31세 남자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노래방에서 몇천 원, 만 원 조금 넘는 야식으로 슬픔을 달랬다. 하지만 그가 목표를 이루려면 혼자 9,000원을 써서 영화 한 편 본 것조차 절약의 대상이 돼야 한다. 돈을 모으기 위해 취향을 포기한 세대에 이어, 돈을 모으려면 연애도, 최소한의 여흥도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왔다. 김생민이 부모 세대의 생활 방식을 이어 받아 안정된 삶의 막차에 탔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미션이 됐다. 그들이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전 세대처럼 아끼라는 말을 하되 타인의 입장을 들을 줄 아는 김생민이 그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다. 다만 다시 시간이 흘러 이런 조언마저도 무의미한 것이 됐을 때, 돈을 모으기 위해 더 이상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기성세대는 무엇을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