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사랑하는 사람의 일을 이해할 때

2017.11.02 페이스북 트위터


SBS ‘사랑의 온도’는 하명희 작가의 작품 중 부익부 빈익빈의 굴레를 가장 잘 묘사했다고 평가받은 ‘상류사회’ 이후의 대한민국을 그리는 듯하다. 가난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허황된 꿈이 안정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비판받는 시대 말이다. 주인공 이현수(서현진)는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드라마 작가를 하겠다고 사표를 던진 30대 여성이고, 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얹혀살면서 “한심하다”는 구박을 받는다. 온정선(양세종)은 정성이 들어간 음식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외골수 요리사고, 대형 제작사 대표의 투자를 받고 나서야 비즈니스의 영역을 고민한다. 최원준(심희섭)은 의사의 길을 접고 아예 요리사가 되겠다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사랑만 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택한 주인공들에게는 필사적으로 이뤄내야 할 나만의 직업적 성취가 있고, 스스로가 세운 직업윤리의 영역이 있다. 따라서 모든 사건은 그들이 일하는 동안, 혹은 일하는 공간이라는 명확한 직업적 범주 안에서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끼리 쉬쉬할 법한 불편한 다툼도 즐비하게 그려진다. 유명 드라마 작가의 대본을 거의 대필하다시피 하는 지망생들의 모습이나,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시청률 부진의 책임을 여기저기 돌리는 PD와 작가의 모습이 적나라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히 묘사된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글을 지키려는 이현수의 의지나 음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온정선의 노력은 그들의 연애 이상으로 높은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사랑의 온도’에서 사랑은 오히려 부차적인 요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네 명의 주인공들조차 서로의 직업적 성취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이현수는 넘치는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온정선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레스토랑 밖에서 혼자 신나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 나서 이현수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일터다. 또 그는 온정선이 가장 잘나가는 배우를 모른다고 하자, 다른 수많은 드라마에서 그러듯 “애인이 드라마 작가인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핀잔을 하지 않는다. 셰프인 남자친구가 연예인 이름 정도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휴대전화로 검색하는 그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사랑의 온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들은 서로의 전문적인 영역을 존중하고, 일과 관련해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사랑의 온도’는 특정 직업군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연애를 마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모든 일상을 지탱하는 연결고리가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현수와 온정선은 여섯 살 차이다. 그들은 “사랑보다 일이 먼저”라는 말로 이현수에게 거부당했던 온정선이 5년 뒤에 “지금은 (사랑보다) ‘굿스프’가 먼저”라고 말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사랑의 온도’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다. 이들이 시간 차를 두고 서로의 온도를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드라마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조금씩 구체적인 감각을 불어넣는다.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반하는 순간마다 흑백으로 화면이 바뀌는 것처럼, 잡히지 않는 사랑이란 개념을 현실과 연결하는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기억될 것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들은 두 주인공이 서로를 별 뜻 없이 바라보거나 별것 아닌 마음씀씀이로 서로를 감동시켰을 때 불현듯 등장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흑색처럼,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도 있다고 말한다. 흑백으로 기억된 순간순간이 쌓여 만들어진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런 기다림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랑의 온도’는 그 의심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다. ‘피상적인 관계에 길들여져 있는 청춘들의 사랑과 관계를 그린 드라마’라고 작품을 소개하는 이 드라마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이 세상에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글. 박희아
CREDIT 글 | 박희아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