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와인스틴이 권력으로 저지른 죄

2017.10.18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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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스 맥팔레인은 여우조연상 후보자를 발표하며 이런 농담을 한다. “축하합니다, 여성분들. 이제 더 이상 하비 와인스틴을 좋아하는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로 가득한 관객들은 그 농담을 듣고 웃었지만, 이제 우린 그게 더 이상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 가십으로 존재하던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의 추악한 얘기는,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공공연한 비밀에서 공식적인 사실이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하비 와인스틴은 지난 30여 년간 업계에 발을 들이려는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귀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로즈 맥고완, 애슐리 저드, 레아 세이두, 카라 델레바인, 케이트 베킨세일, 에바 그린, 아시아 아르젠토 같은 여성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와인스틴의 회사 직원들 또한 피해자였다.


평소 하비 와인스틴이 진보 인사로 유명하고, 페미니즘의 적극적인 지원자였기 때문에 이 보도는 어떤 이들에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2015년 그의 회사는 캠퍼스 성폭행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헌팅 그라운드’의 배급을 맡았고, 버락 오바마의 딸, 말리아 오바마를 인턴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지난해 자신의 맨하탄 집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위해 기금을 모금하기도 했고, 선댄스 영화제 기간엔 유타에서 여성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하느님보다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많이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그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성폭력으로 그를 고소하려는 여성과 최소 8번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와인스틴은 일에 대해 논의하는 척, 여성들을 호텔방으로 불러 마사지를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기가 옷을 벗고 씻는 모습을 여성들에게 봐달라고 했다. 업계에서의 커리어가 망가질 것을 두려워한 여성들은 와인스틴의 성폭력 앞에서 무력했다.


시상식에서 농담거리가 될 정도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사실이 보도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뉴욕 매거진’은 그 이유가 권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무력한 여성들을 상대로 휘둘렀던 권력은 호텔방 밖에서도 법적, 직업적, 경제적인 모습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영화계에서의 영향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동시에 시대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이야기가 주요 언론에서 보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쓴 조디 칸토르는 인터뷰에서 문화적인 변화가 제보자들의 증언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제보자들이 “적어도, 여성들이 혐의를 제기하고도 추문에 휩싸이던 시대는 끝났다”고 낀다는 것이다. 거기엔 빌 오라일리에 대한 보도나 실리콘 밸리의 성폭력 문화에 대한 보도가,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줬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런 사건이 몇십 년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문제와 별개로,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분명 중요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복스’는 와인스틴에서 그치지 않았다. ‘복스’는 와인스틴이 아카데미에서 쫓겨난 겨우 2번째 인물이라며, 비슷한 혐의를 받는 빌 코스비나 로만 폴란스키가 아카데미에 남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들이 하비 와인스틴 루머에 관해 잘 알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쓴 ‘버즈피드’의 기사도 의미가 있었다. 어떤 남자와 단둘이 있지 말라는 누군가의 충고는, 그게 설령 루머에 근거하더라도 여성들에겐 생존과 직결되기에 그렇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버즈피드’는 “누가 당신 업계의 하비 와인스틴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할 것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비 와인스틴의 사안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안이 공공연한 비밀에서 보도까지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문화적 변화와 이 사실을 밝힌 여성들의 용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엠마 톰슨이 얘기하듯, 하비 와인스틴의 사안이 극단적인 남성성이 초래하는 사회적 위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길 기대한다.

CREDIT 글 | 윤지만(칼럼니스트)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