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준비하기

2017.10.16 페이스북 트위터

셔터스톡

중학교 때부터 산 아파트 단지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는 동화면세점과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노선의 버스가 선다. 서울의 크고 작은 시위들은 모두 그 일대에서 열린다. 그 버스를 참 자주 탔다. 근현대사 시간에 졸지 않는 것이 자랑이었던 고등학생 때는 ‘구국’에 보탬이 되겠다는 의협심으로 눈을 빛내며 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조국의 미래를 이끄는 지식인’으로서의 본분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비장하게 타곤 했다.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활동 단체에서 일한 이후에는 이런 ‘구국’의 현장에서조차 시민이기 전에 먼저 ‘여자’로 규정되어 언어폭력, 성희롱에 노출되기 쉬운 여자들과 연대한다는 모종의 책임감 혹은 자매애로 아이라인을 좀 더 짙게 긋고 버스에 타곤 했다.

하지만 시위에 이런 의협심, 사명감, 책임감 같은 마음만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무얼 가져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요즘 부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생존 배낭을 참고하면 좋다. 보통 내가 챙기는 것은 500mL 생수 한 병, 빵이나 초코바 등 간단한 간식, 물티슈, 휴대용 방석, 손 세정제, 무릎 담요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위가 열리는 광화문, 시청 일대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 없지만 시위의 규모가 커질 때를 고려한 리스트이다. 자리에 앉아 발언을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편의점에 가려고 해도 어느새 불어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 곤란하거나 가는 길이 아예 경찰 벽에 막혀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야외에서 두세 시간 정도 진행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휴대용 방석과 무릎 담요도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이 모든 것을 담는 가방으로 어깨에서 미끄러지기 십상인 숄더백은 곤란하다. 백팩이 가장 좋다. 보조배터리나 지갑을 용이하게 적시에 꺼낼 수 있게 보조 힙쌕을 할 수도 있다. 가방 없이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입고 가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자칫 ‘전문시위꾼’으로 오인당하거나 어쩌다 대열의 선봉에 섰을 경우 사람들이 당신에게 구호 선창을 기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목이 부담스럽다면 삼가는 것이 좋다.

내가 깃발을 들고 나가 사람들의 선봉에 서는 역할일 때는 여기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다. 페미당당이 처음 주최자로 참여했던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래서 깃발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쩐지 시위대의 깃발이라고 하면 은밀한 아지트에 모여 장대를 구하고 천을 찢어 일필휘지로 로고를 그려 넣어 매다는 장면이 생각나지만, 인터넷 세상에는 이미 시위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제작하는 전문 업체가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튼튼하고 비싼 카본 소재 낚싯대를 골라 로고 일러스트레이션 파일을 넘기고 깃발의 사이즈를 결정해 제작을 맡겼다. 깃발은 여러모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단 구구절절한 말 필요 없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대충 시위의 성격을 알려준다. ‘페미’라는 글자가 들어간 4m 깃발이 등장하는 시위가 어떤 시위이겠는가. 길잡이 역할도 한다. 대규모 시위에서는 이동이 잦아지고 동선을 예측할 수 없는 만큼 ‘몇 시에 어디에서 봅시다’라는 말 대신 ‘이러하게 생긴 깃발을 찾아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편하다. 그다음은 메가폰을 사는 것이었다. 출력 좋은 앰프를 사자니 너무 비싸고 무거웠다. 시위에 잔뼈가 굵은 시민단체 활동가분의 조언을 받아 적당한 출력에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끈이 달린 메가폰을 샀다. 선봉에 서기 위한 필수품이 바로 위의 두 가지이다. 시위라면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가 적힌 A4 사이즈의 코팅지로 만드는 ‘손팻말’은 단가가 너무 비싸 제작하지 못했다. 대신 일반 인쇄용지보다 조금 두꺼운 재질의 종이를 선택해 충무로 인쇄소에 제작을 맡겼다. 스티커는 의외로 제작 단가가 크게 비싸지 않다. 민중총궐기에서는 ‘페미존’의 가이드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 쓸 ‘페미자경단’ 스티커를 천 장 제작했다. 아무리 현장에서 나눠 주고 노트북에 붙이고 다이어리에 붙여도 줄지 않아 여전히 항상 몇 장씩 가지고 다니다 주변에 선물하곤 한다.

페미존의 여자들에게는 ‘생존배낭’과 깃발, 메가폰같이 무거운 물건들만이 필수품이 아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여성인권에 관한 구호를 외치다 보면 수많은 적의를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시위가 끝나고 해산할 때쯤이면 너무 지쳐 빨리 그곳을 벗어나 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나를 버티게 한 것은 그 적의를 함께 버텨낸 페미존의 여자들이었다. 시위에서 소속감을 느껴본 게 처음이라며, 대로변에서 큰소리로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쳤을 때 느꼈던 해방감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이, 마치 대학 초년생일 때 ‘구국의 사명감’을 느끼며 비장하게 버스에 탔던 것처럼 이 사람들을 위해 선방에 서서 최소한 확성기 스피커라도 잡아야겠구나 하며 버스에 타게 만들었다. 수십 번 시위 장소로 나가는 버스를 탄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몸과 마음이 지칠까 봐,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시위에 나오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당신이 광장에서 외롭지 않게, 울지 않게 도와줄 사람들이 서 있는 깃발을 어디선가 꼭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CREDIT 글 | 신화용(페미당당 활동가)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