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면

2017.09.28 페이스북 트위터

Engadget Youtube 캡쳐

수천, 수만 가닥의 털이 움직이는 것을 부드럽게 그림으로 그려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 많은 털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어 1초 동영상마다 20장씩 30장씩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람 손으로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컴퓨터로 털이 바람에 어떻게 휘날릴지 계산해서 자동으로 그 움직임을 그려 넣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물 털을 애니메이션 속에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빛이 굴절되고 반사되어야 나타나는 독특한 물의 출렁거리는 느낌도 사람이 상상해서 그리기보다는, 컴퓨터로 어떻게 물이 영상을 왜곡시키는지 계산해 그려낼 때에 더 쉽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귀여운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털이 어떤 식으로 흔들리는지 하는 것을 물리학 지식을 이용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계산하는 기술이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신나는 바닷속 모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이라는 액체의 움직임과 그때의 빛에 대해 계산할 수 있는 유체역학과 광학 지식을 다루는 것이 귀중한 기술이었다. 영화, 만화, 미술의 성취를 위해서 컴퓨터 기술과 함께 다양한 과학 분야의 지식이 결합되었고, 그 결과 그림이 움직이는 신비를 이루어낸 것이다.

애니메이션 기술의 선도 업체들 사이에서는 컴퓨터, 수학, 물리학의 여러 기술이 결합되는 이러한 방식이 상대적으로 친숙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 기술 결합의 초점은 어느새 인공지능 기술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 디즈니 사에서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의 얼굴 표정 변화를 자동으로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기술을 발표했다. 표정이 없는 얼굴 모양만 입력되어 있으면, 웃을 때, 울 때, 화낼 때 어떻게 얼굴이 변하는지 컴퓨터가 계산하여 얼굴 모양을 바꾸어 그려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에서는 입꼬리가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 눈은 얼마나 초승달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계산하여 그림을 부드럽게 조작해준다. 이런 기술은 뮤지컬 영화를 특히 많이 만드는 편인 디즈니 사에서는 더욱 쓸모가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음이 높이 올라갈 때에 변하는 표정, 가사에 따라 변하는 복잡한 입 모양을 음악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도록 컴퓨터가 그림을 바꿔줄 수 있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한다면, 어지간한 만화가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작은 인간 감정의 떨림이나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나타내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인공지능이 섬세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다른 기술 간의 결합은 점점 더 놀랍게 발전해가는 듯하다. 애니메이션을 더 쉽게, 더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다양한 기술에서 인공지능은 갈수록 더 널리 활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래에 컴퓨터 기술과 과학의 여러 영역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한 분야의 산업에서도 인공지능을 연결 고리로 해서 서로 다른 기술은 결합되며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연예 기획사에서는 인공지능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해서 목소리가 좋은 가수가 전자책을 읽어주는 산업에 도전할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사법부에서는 어떤 재판의 결과에서 형량이 무거운지 가벼운지를 따질 때에 인공지능이 과거의 판례를 분석해 내놓는 통계를 진지하게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즈니 사에서는 이야기의 재미있는 정도에 점수를 매겨 판정하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나는 인공지능이 재미난 소설을 대신 써주는 시대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맞춤법 오류 교정을 넘어서서 비문을 지적하고 수정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동어 반복을 피하는 표현을 추천해주거나 운율을 맞추기 위한 단어를 자연스럽게 골라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등장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물며, 인공지능 번역 프로그램의 발전은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해주는 통로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어 번역 프로그램으로 일본 만화나 게임을 읽는 사람들은 벌써 10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 있었으니까.

이런 변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 분위기와 제도는 이러한 서로 다른 영역의 결합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문과, 이과, 실업, 예체능을 나누어 교육하고 진로를 결정시키는 제도나, 매사에 사람을 문과형과 이과형으로 나눠서 따지는 분위기가 언제까지 괜찮은 것인지, 어느 선까지 필요한 것인지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런 구분이 필요한 영역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미분방정식을 이해하고 있는 화가라든가, RNA 코돈에 친숙한 극작가가 더 많이 필요한 시대로 우리는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학제 간 융합이나 융합형 인재에 대한 정부의 다양한 계획도 자주 보고 있기는 한데, ‘융합’을 외치는 담당자 외의 다른 영역에서 과연 그런 생각을 품어줄 수 있는 변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융합 연구가 인기 있다’는 바람이 부니, 정부 기관에서 정한 ‘융합 연구 요건’을 만족시켜 연구비를 따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구색 맞추기로 연구팀에 끼워 넣는 교수를 한 명만 찾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인문학 분야의 교수도 한 명 더 연구팀에 참여시켜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푸념이나 들리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CREDIT 글 | 곽재식(화학자/작가)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