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의 질문에 답하기

2017.09.27 페이스북 트위터


문희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여러 차례 주변인들의 안부를 묻는다. “하우 알 유? (How are you?)”, “하우 해브 유 빈? (How have you been?)” 영화에서 LA 주민들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그가 가장 먼저 따라 하는 말도 이것이다. “왓츠 업? (What's up?)” 짧고 간결한 인사는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박민재(이제훈) 형제와 ‘도깨비 할매’를 미워하던 시장 상인들에게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일상으로 자리한다. 모두가 조금씩은 귀찮아하던, 어르신들의 안부 인사가 그리워질 정도로 재미있고 따스한 말 걸기다.

지난 2006년에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나문희는 영화가 왜 힘든 작업인지 묻자 “(속에 있는 걸) 퍼내면 외려 안 힘들 것 같은데 그걸 안에 담고 있어야 하니까 힘든 거(씨네21)”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동안 나문희는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많은 메시지를 속내에 담고 있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그는 언변이 뛰어난 며느리에게 주눅이 들어 고작 “호박고구마”라는 말에 울분을 담는 애처로운 노인이었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엄마는 시끄러운 거 싫어해. 조용히 뿌려.”라고 친구들에게 무심한 척 주문했다. 그러나 정작 카메라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묵묵히 어머니의 어깨를 감싼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비췄다. 시청자와 관객을 웃길 때도, 울릴 때도 배우 나문희는 모든 것을 대사로 풀어내기보다 내면에 많은 것을 묻어둔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말로 모든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성우로 방송계 생활을 시작한 그가, 이면에 숨기고 있던 외로움과 슬픔을 터뜨리는 순간에 관객이 반응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영화인 ‘아이 캔 스피크’에 나문희가 출연한 이유는 “‘나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의 의미가 마음에 쏙 들었(매거진M)”기 때문이다. ‘말하기’를 선언한 이 영화에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서글픈 감정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나문희의 모습은 배우로서 갖고 있는 마음가짐으로 연결된다.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남은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뭔 비결이 있겠냐.”고 되묻다가도, “뭘 하더라도 마음이 미워지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씨네21)”는 대답을 내놓는다.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호흡을 맞춘 이제훈의 어깨를 다독이며 “잘난 이제훈 씨”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노년의 배우가 까마득한 후배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진심이다.

과거 노희경 작가는 나문희를 캐스팅하려는 영화 제작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에 “세상이 아직도 귀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이 솟았다.”고 말했다(씨네21).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희망적인 존재였던 나문희가 위안부의 아픔을 연기하며 또 다른 희망을 심는다. 다만, 그가 전하는 안부에 대한 답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 (I'm fine, thank you. And you?)”
CREDIT 글 | 박희아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