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이별하는 남자

2017.08.28 페이스북 트위터
윤종신이 1990년에 부른 데뷔곡 ‘텅빈 거리에서’에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 두 개’를 만지작거리는 화자가 등장한다. 헤어진 뒤에 옛 연인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노래로 부르는 남자. 윤종신은 지난 27년 동안 자신의 이별 노래에서 늘 그런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해 ‘좋니’로 다시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 문자 그대로 4반세기 동안 변하지 않는 감성으로 이별하는 남자를 그려온 윤종신의 가사들에 대한 농담 반, 진담 반의 연구.




오래전 그날
1993년 3집 ‘The Natural’

작품 해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라는 그 유명한 첫마디에서부터 알 수 있듯, 성인이 되자마자 만난 연인을 회상한다. 곡의 히트와 함께 윤종신을 대표하는 낭만적인 러브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사실 이 곡은 옛 여자친구에 대한 무시무시한 디스곡이다. 옛 연인과 함께했던 기억은 대학교에 함께 있었던 정도로 마무리하고,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나 제대하기 얼마 전’ 다른 남자를 만나 ‘미움도 커졌’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슬픈 계산은 없었던 시절’이라는 것은 자신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제대하기 얼마 전’ 다른 남자를 만난 상대방에 대한 책망의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심지어 그가 ‘오늘 난 감사드렸’다는 이유도 ‘누군가 널 그토록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 아직도 널 잊지 못하지만 찾고 찾은 감사의 이유가 현재 남자친구 때문이라는 부분은 이른바 ‘돌려까기’의 정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는 위험한 발언은 옛 연인에게 굳이 ‘나 잘 살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스웨그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윤종신이 2017년에 데뷔했다면 힙합을 하며 ‘구여친’을 디스하지 않았을지. 윤종신의 너무나 낭만적인 목소리와 기념비적인 도입부의 멜로디로 오지랖 넓고 뒤끝 있는 ‘구남친’의 모든 것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대가 낳은 파격 아닌 파격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윤종신이 아닌 박주연이 쓴 가사지만, 그 후 이어질 윤종신 발라드의 원형이 된다고 할 만한 가사.


1월부터 6월까지
행보 2013 윤종신


작품 해설

1월 13일부터 6월 17일까지 일어난 연애 이야기. ‘밤에 공원’, ‘그 햄버거 집’, ‘지하상가 그 덮밥집’에서 데이트한 기억들을 되짚는 남자에게 ‘신발과 가방’을 좋아하는 그녀는 굳이 신발과 가방을 ‘좋아했지만’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은근히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결국 어떤 이유에선지 ‘4월의 첫날’ 그녀를 처음으로 울렸고, ‘기싸움’을 거쳐 6월 17일에 헤어졌다. 하지만 5개월 정도 만난 상대방에게 ‘한 달도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걸 보면 미련이 많이 남는 상대였나 보다. 그래서 ‘늘 설렜다는 걸 그녀는 알까요.’, ‘진짜 내 맘 그게 아닌데.’처럼 말하지 못한 마음을 이제야 표현한다. 진심을 가졌지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만나고 헤어진 날과 데이트 장소를 일일이 기억하며, ‘그녀’를 ‘신발과 가방’을 좋아하는 것으로 기억하는 남자.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면, 맞다.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제목의 글만 읽어봐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 ‘여친이 저를 못 견디는 것 같습니다…. 헤어지자네요.’


나이
행보 2011 윤종신


작품 해설

특유의 직설적이고 디테일한 작법에서 벗어나 문학적인 비유로 가득 채워졌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그로부터 느끼는 삶의 회한. 마치 중년 남성들의 복잡한 심리를 그대로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두 자리의 숫자 나를 설명하고 / 두 자리의 숫자 잔소리하네 / 너 뭐하냐고 왜 그러냐고 지금이 그럴 때냐고’라는 구절은, 그동안 써온 수많은 이별 가사가 쓸모없는 감상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혼내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이미 ‘내 가슴 고민들’에 억눌려 고통스러워하는 중년 남성에게, 연인과의 이별이란 현실에 역행하는 ‘어린 변화’일 뿐이니 말이다.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 때가 됐지만, 이 나이는 ‘이렇게 떠밀리듯’ 가는 상황을 걱정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뒤범벅이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말하는 감정은 절절하다. ‘오래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이별 노래를 쓴 남자가 40대에 쓴 스스로에 대한 회한과 의지가 복잡하게 담겨 있다. ‘지쳐가는 날 사랑해’라고 할 만큼.


여권
2017 월간 윤종신 5월


작품 해설

연인과 헤어진 뒤, 혼자가 된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화자. ‘마침 옆자리가 비었’다면서 편하다고 자랑하던 그는 연인과 찍은 사진을 꺼내보다 무너진다. 그리고 늘 그렇듯 윤종신이 그리는 특유의 자존감 낮은 남자의 감정 묘사가 이어진다. ‘못생긴 나의 사진’을 보며 ‘왜 떠나보내야만 한 거니’라고 묻고, ‘처량해’라며 미련이 남은 남자의 구구절절한 이별 멘트. 데뷔 27년째인 올해 부른 노래지만, 윤종신은 여전히 떠난 뒤 상대에게 전하지 못한 감정에 후회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말하지 못한 못난 나, 하지만 그래서 더 슬퍼 보이는 나. 그리고 이 남자의 캐릭터는 이제 대를 이어 계속될지도 모른다. ‘여권’은 윤종신과 같은 소속사의 박재정이 불렀고, 두 달 뒤 박재정은 윤종신 작사의 솔로곡 ‘시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권’이 박재정 발라드의 시작점이고, ‘시력’은 본격적인 행보라 볼 수 있다.”(스포츠월드)


좋니
LISTEN 010 좋니


작품 해설

‘좋니’에서도 윤종신은 24년 전 ‘오래전 그날’처럼 옛 연인을 회상한다. 화자는 ‘잘 지낸다고 전해 들었’다며 여전히 상대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벌써 참 좋은 사람’ 만나고 있다며 상대방에게 하는 은근한 원망도 그대로다. 윤종신은 헤어진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그런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렇게 슬픈 나’를 낭만적으로 그려냈고, 이것은 이별을 한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연애담을 재구성할 때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연애는 자신의 입장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좋니’의 마지막에는 이 남자가 자신을 스스로 ‘뒤끝 있는 너의 예전 남자친구’라 인정한다. 그 점에서 ‘좋니’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솔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솔직하게 인정한 곡일지도 모른다. 이 남자는 이제 자신이 어떤 사랑과 이별을 해온 것인지 알게 된 것일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좋니’는 그의 수많은 곡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CREDIT 글 | 박희아
디자인 | 전유림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