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2017.08.21 페이스북 트위터

머니투데이

지난 7일, 정부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의학적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보장률이 선진국에 비해(80% 수준) 너무 오랫동안 낮은 상태(10년 동안 60% 초반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개선하고, 갑작스러운 중병 진단에 따른 재난적 의료비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 내용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적인 제도이면서도 제대로 논의되기 어려웠다. 간략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의 진료행위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환자를 만나 병력을 청취하고,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임시 진단을 내리고, 이 판단을 확인해줄 몇 가지 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이후에는 진단명에 맞는 표준화된 치료를 진행하고, 치료 효과를 판정하기 위한 추적 관찰과 검사를 반복한다. 진료를 하면 당연히 그에 따른 비용이 드는데, 한국에서는 이 비용의 일부를 환자로부터 본인부담금으로 받고, 일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의 형태로 받는다. 환자에게 제공된 의료서비스 중에 원래 급여 항목에 들어 있지 않은 검사나, 급여 항목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 모든 비용은 모두 환자 본인 부담이고, 이를 비급여라고 하며, 비교적 자율적으로 병원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초음파검사나 MRI 검사의 시행 및 판독 비용, 공단 검진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 운영하는 건강검진 비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재인 케어’는 예방적인 처치(건강검진, 예방접종)들은 제외하고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급여 항목으로 전환시킬 예정이다. 환자가 보다 많은 의료 서비스를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케어’는 근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다만 이 정책이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아 성공적으로 시행되려면 실효성과 세부 계획에 대해 논의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

현재 의사들이 맞닥뜨리는 ‘현장’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흔한 예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머리를 다쳐서 병원에 왔을 때, 두개골 내부의 손상이 의심되면 두경부 CT를 찍는다. 가벼운 외상으로 뇌출혈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지만(보통 뇌출혈은 뇌동맥류 같은 혈관의 기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얼마나 심한 충격이었는지 파악할 수 없고, 겉으로만 보고 환자 머릿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의사는 작은 위험에도 대비하기 위해, 혹은 환자의 요청으로 CT 촬영을 지시한다. 검사 결과, 뇌출혈 같은 분명한 진단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이 검사 비용은 비급여 항목으로 전부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 어려운 바쁜 진료 현장에서 의학적 필요성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의사가 강한 의심을 갖고 검사를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예상한 진단이 나오지 않으면 검사의 의학적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급여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은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현장의 경험보다는, 보험 재정을 운영하고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급여 기준을 만들고 의료 행위가 지불 기준에 적정한지를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행정에 편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환자를 보는 일은 지금의 일이고, 공단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급여의 기준은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만, 급여를 지불할 수 없다는 통보인 삭감의 기준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만일 공단이 삭감을 통보하면, 서비스는 이미 제공된 상황에서 의사는 수익은커녕 지출한 비용 보전도 어려워진다.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돌려줘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보험공단을 통한 지불 구조에 동의해야 하며, 기관의 지시에 맞는 의료 행위를 했을 때만 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다. 모든 의료서비스가 예외 없이 모두 급여로 전환될 경우, 의사가 환자의 상황에 맞춰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든다. 의사들이 전면 급여화 발표를 두고, 자신의 모든 의료 행위가 통제되고 그저 처방 기계로 치부되거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공포감으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모든 의료서비스를 전면적으로 급여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든 진료 과정을 기계처럼 표준화/매뉴얼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환자는 본인이 제공받는 모든 의료서비스가 급여 항목으로 저렴하게 제공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의사에게 요구하지만, 진료 과정에서 의료서비스의 급여 여부를 즉각적으로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고, 의사의 예측 범위에는 늘 한계가 있다. 의사는 생각보다 자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급여의 기준에 맞지 않아도 전문가로서의 재량을 발휘해 환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라도 지시를 내려야 할 지, 아니면 엄격하게 급여의 기준을 따라 그에 맞는 서비스만 제공할지. 전자를 선택하면 부당 청구로 비용을 지급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부당한 진료라는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될 위험이 있고, 안전하게 후자를 선택해도 운이 나쁘면 최선이 아닌 진료의 결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법리상 급여 규정보다 의사의 최선의 진료 의무가 우선). 양쪽 다 온전히 의사 혼자서 져야 하는 위험이다.

10년 전 여의성모병원 임의비급여 환수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 건은 정말 시끄러웠다. 임의비급여란, 병원이 급여의 기준에 포함되는 검사나 치료를 기준보다 많이 제공했을 경우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고 삭감될 위험에 대비하고자 급여 기준을 넘어서는 치료비용을 동의하에 환자 본인이 전액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시 항암제 사용의 양과 빈도를 늘리는 최신의 치료 기술을 백혈병 환자들에게 최대한 적용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었지만,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환자들은 본인들이 지불한 비용이 부당하다며 공단과 심평원에 민원을 냈다. 그 결과, 병원은 환자로부터 받은 치료비용과 공단의 급여비용 약 30억을 모두 돌려주고 과징금 약 141억 원을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병원은 이에 불응해 보건복지부와 보험공단을 상대로 취소 소송을 냈고 최근에야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치료비용으로 커다란 경제적 부담에 놓여 있던 환자들이 구제 방법을 찾으려 했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로 해당 병원은 억울한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의사들에게는 환자를 믿고 전문 지식과 선의로 내린 최선의 의료적 결정이 오히려 곤란한 일을 크게 겪을 빌미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전면 급여화 대책을 발표한 이유에는 이러한 맥락이 들어 있을 것이다. 급여 기준이 의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시행하고, 통과하면 일단 급여화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겠다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전면 급여화가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국면은 현재도 큰 문제인 고차병원(대학병원)의 과밀화 문제다. 우선 해결을 약속한 3대 비급여인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 이용료,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모두 대형병원 이용과 관련한 비급여 항목으로, 원래의 의도는 가장 문제가 되는 환자의 부담을 먼저 해결하겠다는 뜻이나, 결과적으로는 가격 장벽을 낮추는 효과로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가 더 심해지지 않겠냐는 우려다. 대학병원은 중증의 환자들에게 최신의 의학기술을 적용하면서도 환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의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동시에 양질의 의료 인력을 훈련시켜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학병원에 사람이 몰리면, 꼭 필요한 진료에 적정의 인력이 투입되기 어렵고 연구와 교육에도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게 된다. 대형병원의 인력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로, 전공의들은 필수진료과의 수련을 기피하고, 3교대로 고된 노동을 감당할 간호사들 역시 부족한 상황이며, 의사든 간호사든 숙련된 의료 인력들은 모두 많은 환자와 다양한 요구를 소화하느라 이미 번아웃 직전이다. 중증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이 대학병원 입원실이 비기를 기다리며 늘어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도 아주 흔한 대형병원 응급실의 풍경이다.

물론 정부는 별도의 답변을 통해,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동네병원 위주로 수가 구조를 개편하고, 그 외에도 다른 정책들을 함께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경제적 유인은, 사람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며 이미 기존 지불 제도의 여파와 왜곡된 인식이 만들어낸 국민들의 건강 행태와 의료 문화가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사이 동네 의원이나 중소병원이 현재에도 마주하고 있는 도산의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고, 대학병원에는 비용 부담과 자원 부족이라는 과제가 남는다. 비급여 항목의 수익 없이 모든 의료서비스의 급여만으로 대형병원이 양질의 의료 인력과 현재의 거대 병상 시스템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도 지켜봐야 하겠다.

환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은 이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원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고, 그 지점에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을 고려한 현실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당장 이번 전면 급여화 정책이 시행되려면 의료보험료 인상은 피하기 어렵다. 정책을 제대로 시행한다면, 지금의 건강보험 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36조의 외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인구 전반의 고령화 문제도 있고, 기술 발전에 따라 의료비용은 상승하기만 할 뿐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이 충분한 재원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양심적이고 원칙적인 의사일수록 적절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충분한 지식과 건전한 양심을 가진 능동적인 의료 인력의 수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의사들의 의료서비스 제공 행태와, 그 영향을 받는 환자들의 건강 행태에 국민건강보건의 수준이 달려 있다.

의사들이 스스로를 전 세계적으로 칭찬받는 이 훌륭한 의료보험 시스템의 가장 큰 희생양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의사들이 우선해야 할 일은 굳이 국민들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문재인 케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는 의사들도 계속해서 지적해왔던 일이고,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는 것은 어찌 되었든 환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득이 된다. 수가와 급여 기준을 현실화하고, 삭감 기준을 명확히 밝힐 것을 공단과 심평원에 강력히 요구하는 동시에, 진료 현장과 바깥에서 환자들과의 신뢰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수가와 비용 문제에만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높은 윤리 기준을 갖고 의료계 내부에서 비윤리적인 행위로 전문가의 명예를 저버린 의사들을 징계하는 등 강력한 자정 기제를 발휘하기도 해야 한다. 의사는 신뢰를 쌓고, 환자는 의사의 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푸는 것은 제도를 수립하고 관리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기존의 건강보험제도는 오랫동안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를 무시해왔고, 그 운영 방식은 건강한 진료 환경의 기초가 되는 환자와 의사 간 관계를 이미 지나치게 훼손했다. 전면 급여화는 무척 좋은 일이지만, 정말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려면 짚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좋은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CREDIT 글 | 문주연 (가정의학과 전문의)
사진 | 머니투데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