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원, 새로운 ‘랜선 남자친구’

2017.08.16 페이스북 트위터


KBS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이 종영 후에도 계속 살아서 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7일 데뷔한 보이그룹 워너원이 그 답이 될 것이다. 그들은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통해 두 달 이상 외모, 춤, 노래로 자신들을 어필하며 갈등, 경쟁, 화합, 이별의 드라마를 썼다. 그리고 종영 후, 강다니엘이 강다니엘인 채로 활동한다. 그 결과는 미친 듯한 열광이다. 워너원의 데뷔 앨범 ‘1X1=1(To be one)’은 발매 첫 주 40만 장 이상을 팔았고, 타이틀곡 ‘에너제틱’은 음원차트 실시간 1위를 점령했다. KBS ‘해피투게더’ 녹화 당일에는 팬들이 너무 몰려 멤버들의 이동 중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작진이 안전선을 치기도 했다.

지난주 네이버 ‘댓글 많은 뉴스’ 순위 1위는 ‘‘워너원’ 강다니엘 센터 분량 두고 팬들 불만 제기… 과거 I.O.I도?’로, 13일 현재 2만 9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들 중 92%가 여자고, 연령대에서는 30대가 33%, 20대가 31%로 비중이 높다. 10대는 12%로, 40대의 18%보다도 적다. 20~40대 여성은 드라마에 출연한 남자 배우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대부분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은 10대처럼 보이그룹의 모든 것을 열광적으로 찾아서 소비하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그들에게 금세 몰입 가능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부여했다. 그런데 ’프로듀스 101 시즌 2’는 직장인들이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금요일 밤에, KBS ‘꽃보다 남자’의 ‘F4’보다 25배 많은 남자들이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며 자신에게 한 표를 부탁하는 쇼였다. 내 한 표가 좋아하는 출연자를 유시진 같은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이 드라마가 끝난 후 현실에서 활동한다.

아이돌을 계속 소비하던 팬덤, 특히 10대는 몇 년 전부터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아이돌의 콘텐츠를 소비했다. 방탄소년단은 SNS를 중심으로 10대들을 파고들면서 미국의 빌보드 어워드에서까지 그 파급력을 인정받았다. 반면 ‘프로듀스 101 시즌 2’ 이전에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거나, 방탄소년단의 이름 정도만 아는 성인 여성들은 아이돌 콘텐츠를 일일이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도 많지 않을뿐더러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는 이런 소비자들에게 TV만 봐도 될 만큼 정리된 캐릭터와 스토리를 부여했다. 종영 후에는 워너원이나 뉴이스트의 멤버들이 KBS ‘해피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요구하는 다양한 유형의 남자친구를 연기한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TV를 켜거나 네이버 캐스트 인기 영상 순위만 확인해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계속 제공한다. 그 점에서 워너원이나 뉴이스트 같은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출연자들은 또 다른 유형의 ‘랜선 남자친구’처럼 보인다. 나의 ‘원픽’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남자를, 매우 편한 방법으로,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만날 수 있다. 그 수요가 상상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워너원 팬들의 열광은 기존 아이돌 그룹들에 대한 그것과 미묘하게 다르다. ‘에너제틱’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하루가 채 안 돼 10만이 넘는 ‘좋아요’를 기록했다. 지난 6월 26일 발표 후 지금까지 음원사이트 이용자들에게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는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의 ‘좋아요’가 13일 현재 13만 3천 정도다. ‘에너제틱’에 대한 반응은 10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한 출연자가 속한 기획사 관계자는 “팬들이 보내는 선물 포장의 센스도 기존 아이돌에게 보내는 것과 다르다. 아무래도 20~30대가 팬덤의 주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워너원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일반적인 관심으로는 쉽게 알기 어려운 정보나 멤버별 캐릭터들이 자막으로 등장하고, 방송 및 언론 종사자들이 특정 출연자의 팬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은 장르적으로는 드라마와 아이돌의 결합이고, 열광의 근원지는 H.O.T, 신화, 동방신기 등을 좋아하던 세대다. 그 점에서 2017년은 ‘大 보이그룹 시대’의 원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최소 10~40대에 이르는 여성이 좋아하는 ‘원픽’ 팀이나 멤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몇십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는 팀들이 연이어 나온다.

‘프로듀스 101 시즌 2’와 관련돼 Mnet, 매니지먼트를 맡은 YMC엔터테인먼트, 지상파가 새로운 현상 앞에서 당황하는 것은 앞으로도 반복될 일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투표 1위 강다니엘이 ‘센터’인 것은 포지션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통해 센터는 강다니엘의 정체성 중 일부가 됐다. 강다니엘이 데뷔곡에서 센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팬들에게 드라마 주인공을 들러리로 만든 것과 같다. 단지 분량 몇 초가 더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강다니엘이 센터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사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Mnet은 기존의 아이돌 그룹 콘텐츠처럼 ‘에너제틱’의 곡과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단지 좋은 곡과 퍼포먼스만으로, 기존과 다른 기준을 가진 팬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또한 지상파는 워너원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되 음악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서는 최대한 출연을 미뤘다. 워너원의 인기를 이용하되 막 데뷔한 케이블TV 채널 출신의 팀에게 무대는 쉽게 내주지 않는, 나름 현명한 견제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워너원의 성적은 이미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출연이 무의미해 보일 정도다. 이미 빅뱅이 SBS ‘인기가요’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을 유지하는 데 문제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현재로서는 그들이 유일하게 무대에 오르는 Mnet ‘엠카운트다운’에 대한 관심만 커질 것이다. 아이돌 그룹에 새로운 요소가 더해지면서, 기존의 관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SNL 코리아 9’의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는 한국의 보이그룹이 북한의 도발을 막았다는 코미디를 하면서, 그 예로 H.O.T, EXO, 방탄소년단, 워너원을 들었다. 우연이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순간이다. H.O.T부터 EXO까지, SM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인기 있는 보이그룹들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기준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른바 3대 기획사 소속도 아닌 방탄소년단이 SM 엔터테인먼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구 시장까지 이르는 거대한 팬덤을 형성했다. 워너원은 기존 기획사가 아닌 방송사의 콘텐츠를 통해 예상치 못한 성격의 팬덤을 만들어냈다. H.O.T. 데뷔 20여 년이 지나 SM 엔터테인먼트 외에 새로운 방식을 들고 나오는 팀들이 비슷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생겨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장르가 한 세대를 지났다. 그리고 예상하기 어려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천재, 새로운 승리자도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팬들에게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새로운 개미지옥의 시작이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