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의 인간 연구

2017.08.02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덩케르크’와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덩케르크’에서 세계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영국 육군은 일주일을 기다려 구출된다. 도슨(마크 라이런스)처럼 군인들을 구출하러 온 민간인 선박들은 덩케르크에 오는 데 하루가 걸렸고, 영국 공군은 1시간이 걸렸다. 영국군 토미(핀 화이트헤드)가 덩케르크의 영국군과 합류하는 동안, 파리어(톰 하디)가 조종하는 영국 전투기 스핏파이어는 덩케르크로 출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덩케르크’의 연출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세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뒤섞고, 비슷한 분량으로 편집한다. 영화 막바지에 파리어가 조종하는 스핏파이어가 착륙했을 때 토미는 이미 구조돼 영국에서 기차를 탔다. 토미의 이야기는 파리어보다 일주일 정도 과거에서 시작, 그보다 미래에서 끝난다. 그 결과 관객에게 파리어의 한 시간은 토미의 일주일 이상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하면, ‘덩케르크’는 관객에게 상대성 이론을 체험케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조셉(매튜 매커너히)의 딸 머피(제시카 체스테인)는 아버지보다 더 빨리 나이 든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우주선을 탄 아버지보다 지구에 있는 딸의 시간이 더 빠르게 가서다. 물론 ‘덩케르크’에서 토미와 파리어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은 편집에 의한 효과다. 스핏파이어는 상대성 이론을 현실에서 입증할 수 있을 만큼 빠르지 않다. 다만 ‘덩케르크’에서 속도는 등장인물들에게 각자 다른 시간대를 부여한다. 가장 빠른 파리어의 이야기가 가장 짧고, 가장 느린 토미의 이야기가 가장 길다. 그들의 시간대는 속도가 같아질 때 만난다. 도슨이 파리어와 함께 출격한 파일럿 콜린스(잭 로던)를 구출하는 순간부터 하늘과 땅의 시간대는 같이 간다. 그때 도슨은 엔진에 무리가 갈 만큼 빠르게 배를 운전한다. 다시 도슨이 토미를 구하자 세 개의 시간대는 하나가 된다. 영화 내내 신경을 긁던 한스 짐머의 음악도 따뜻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로 바뀐다. ‘덩케르크’는 각자 다른 시간대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을 곧 구출로 정의하고, 그것을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만든다.

가장 느린 토미는 그를 덩케르크로 데려다 줄 배를 타야 그나마 생명을 보장받는다. 배는 파리어처럼 공중에서 그들을 보호할 존재가 있어야 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갈 수 있는 거리는 늘어나고, 구해야 할 사람의 숫자도 늘어난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선을 탄 조셉이 인류의 운명을 짊어졌던 것처럼. 파리어는 연료가 바닥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독일 공군기를 격추하려 한다. 착륙 후 스핏파이어를 불태우고 독일군에게 붙잡히는 그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파리어가 고민조차 없어 보일 만큼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달리, 도슨과 그의 아들 피터(톰 글린 카니)는 덩케르크로 가는 것에 대해 다소 갈등한다. 그리고 덩케르크에 있는 모든 육군은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 육군들과 달리 현장과 거리를 둔 채 전체적인 상황을 보는 해군 중령 볼튼(캐네스 브래너)만이 예외다. ‘덩케르크’에서 인간의 선택은 자신의 의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어느 공간, 어떤 속도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토미와 함께 덩케르크에서 살아남은 알렉스(해리 스타일스)는 살아남기 위해 깁슨(아뉴리 바나드)을 위험에 내몰자고도 했었다. 그때 그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옹호했다. 그가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은 귀환 중인 기차에서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때 이성이 되살아난다. 그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보다 숭고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도슨이 구한 군인(킬리언 머피)은 사고로 피터의 친구 조지(배리 코건)를 죽게 만든다. 하지만 도슨은 그 사실을 군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분노하는 대신, 그것이 사고였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 군인이 전쟁을 치른 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는 감정 대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앞세운다. 결과적으로 패전을 하고 돌아온 군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영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음을 이해한다. 이 이성의 끝에는 파리어처럼 위대한 선택을 하는 인간이 있다. ‘덩케르크’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이 사유를 통해 얼마나 숭고한 이성에 다다를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는 것이 필요한 ‘덩케르크’의 거대한 영상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스핏파이어의 공중 전투는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대신 ‘덩케르크’는 하늘에서 떨어져가는 연료를 체크하며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인간을 따라간다. 고요한 하늘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수많은 사람의 생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설정상으로는 한 시간이지만 영화에서는 토미의 일주일만큼 다뤄지는 그 시간을, 관객은 강한 몰입감을 주는 영상을 통해 따라간다. 다른 한편에는 토미를 비롯한 영국 군인들의 고통이 담긴다. 양쪽 다 인간의 모습이고, 전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렇게 시간, 속도,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쟁을 이해시켜 나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왜 인간은 전쟁에서 그토록 잔인해질 수도, 숭고해질 수도 있는가. 그리고 왜 국민들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박수를 보내는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답이 완벽한 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블랙홀처럼 누구도 전부 알 수 없는 영역이므로. 다만 가장 독특한 대답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인셉션’에서 꿈을, ‘인터스텔라’에서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려 했던 그는 전쟁을 시간, 속도,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로 재구성하며 그에 따른 인간의 본능과 이성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 결과 100여 분 동안 전쟁 현장에 집중하고, 별다른 설명도 없으면서도 전쟁과 인간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드러나는 영화에 다다랐다. 이것이 그의 완성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덩케르크’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다른 가장 먼 지점이기는 할 것이다. 돌아갈 연료도 없어 보일 만큼, 그는 자신이 세상을 탐구하는 방식의 끝에 왔다. 이제 그가 이륙해서 찾아갈 곳은 어디일까.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