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과 글

2017.05.22 페이스북 트위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연설 중 몇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 진상 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 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 학살 진상 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진상 규명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와 좌절을 겪으며 희생을 택했다. 그사이 시간은 흘러 37년 전 태어난 김소형 씨가 기념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포옹하며 위로했다. 정치가의 쇼맨십으로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연설에서 “오월의 광주 시민들”이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다는 것을 되새겼다. 그래서 “완전한 진상 규명”은 “상식과 정의의 문제”고,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된다. 독재 권력의 폭력이, 규명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이 개개인에게 씻겨낼 수 없는 비극이 됐음을 알고, 그것을 되풀이할 수 없어 5.18 민주화운동의 의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대중의 감성만을 노린 쇼맨십으로 할 수 있는 연설이 아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공감을 출발점으로 정립한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의 영역이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의 두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두 시대의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피해자의 위로였고, 피해자의 슬픔에 대해 누구나 공감케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이 정서적 공감대 위에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이 어떤 세상을 약속하는지 제시한다. 나는 너의 아픔을 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아픔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기본 전제다. 그는 연설 도중 기발한 표현을 쓰거나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거나 드라마틱한 액션을 취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한 지역의 비극에 모든 국민이 공감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가 담긴 이유를 감성과 논리 양쪽 모두를 통해 설득했다. 어디서든, 무엇에 대해서든 모든 국민을 상대로 통치의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대통령의 연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을 지켜 “광주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하는 후보가 득표율 2위를 하는 나라에서, 이 약속은 스스로 정치적 부담을 지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비극의 피해자의 슬픔에 대해 공감했다. 그 결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국가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 많은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을 실행하려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일을 해야 한다. 연설은 그것을 대외적으로 설득하고 약속하는 수단이 된다. 지난 18일 이후 대통령의 연설, 더 나아가 대통령의 의미는 지난 10년과는 정반대에 위치할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말과 글로 자신의 철학을 설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문장의 주술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처리 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가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방침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과반수의 지지로 뽑은 것이 국민이다. 동시에 그의 국정 운영에 반대해 지난 총선에서 당시 여당을 패하게 만든 것 역시 국민이다. 선거를 통한 국민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순간 다수 국민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그 욕망이 도달한 결과다. 국민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이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권력의 전횡 없이, 폭력적인 수단 없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보편성이 담긴 말과 글로 세상이 움직인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았든, 최소 70% 이상의 국민은 이런 국가 시스템에 동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 대통령은 첫 공식 일정에서 연설을 통해 한 개인의 철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설명했고, 국민의 정서적인 공감까지 얻으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 말과 글의 가치는 복원될 것이다. 영원할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그러니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3분 남짓한 연설문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철학을 설파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국민들에 대한 정서적 설득을 동시에 해냈다. 다듬고 다듬은 생각으로부터 나온 말과 글이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마저 보여줬다.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과연 이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만큼 깊은 생각을 하며 읽는 사람에게 보편적인 설득을 할 수 있었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대중이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의 글과 말을 신뢰할까. 지금 대중을 상대로 말과 글로 지식과 정보와 철학을 전하는 모든 사람에게 놓인 고민거리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