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괴물이 내 집에 침입했다

2017.05.18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해 말,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이수경은 액체괴물을 구입하기 위해 문구점을 찾았다. 텅 빈 박스를 뒤척이던 그는 액체괴물이 다 떨어졌다는 말에 “뭐 하고 놀지”라고 중얼거렸다. 방송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액체괴물이 올랐고, 이후 MBC ‘무한도전’ 선물 포장 미션에 등장해 멤버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액체괴물은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물건이지만, 유튜브와 SNS 상에서는 유명한 콘텐츠다. 본래 영미권에서 ‘slime’이라고 불리는 이 장난감은 유튜브에서 ‘slime’로 검색하면 1200만 개 이상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액체괴물은 미국 작가 조셉 페인 브레넌의 소설에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로 처음 등장, 액체 상태의 끈적끈적하고 기괴한 생명체를 부르는 총칭으로도 쓰이는데(‘환상동물사전’), 요즘 액체괴물의 인기는 마치 슬라임이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유튜브에서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액체괴물이 한국의 유튜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이다. 유튜브의 인기 어린이 채널인 ‘Carrie And Toys’에서 2015년 5월 처음 액체괴물을 만드는 영상을 올려 23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이 채널에 ‘야광 액괴’, ‘반짝이 액괴’, ‘슬라임 팩토리’, ‘자석 액괴’, ‘누텔라 액괴’, ‘액체괴물 챌린지’ 등 액체괴물 관련 영상들이 계속 올라왔다. 물론 그 전부터 액체괴물은 존재했다. 2015년 12월 당시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를 진행하던 이수민은 ‘Carrie And Play’ 채널에 출연, “어렸을 때 통에 든 액체괴물을 사서 가지고 놀았다”는 말을 했었다. 그는 2001년생으로, 지금의 10대들은 적어도 2000년대 후반부터 액체괴물을 접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액체괴물이 ‘나 혼자 산다’에서 이수경도 즐기는 어른들의 놀이가 되기 시작한 것은 유튜브의 문화와 결합하면서다. 액체괴물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 유튜브 채널의 댓글에는 “액체괴물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자주 등장했다. 조회수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유튜버들은 그런 요청에 호응하고, 그것이 다시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에게 퍼진다. 유튜버 허팝은 ‘액체괴물 수영장을 만들어보았다’ 영상으로 조회수 2300만을 넘겼다. 그는 이에 대해 “어린이들이 큰 액체괴물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획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유튜브의 어린이 채널로, 다시 유튜브 전체로 퍼지면서 액체괴물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유행이 됐다. 이 괴정에서 어린이와 별 관련성이 없는 채널에서 액체괴물을 만드는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액체괴물의 활용 방식은 어린이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액체괴물 전문 채널 ‘츄팝’에서는 머랭, 연필심, 치약, 화장품 등 상상 밖의 재료로 액체괴물을 만들면서 공정을 거꾸로 하거나, 한 손만 사용하는 등 독특한 도전을 통해 예능적인 재미를 준다. DIY 채널에서는 비즈, 글리터, 화장품 등을 활용해 예쁜 모양과 좋은 촉감을 지닌 ‘감성 액체괴물’을 만들고, ASMR 채널에서는 액체괴물을 만드는 재료와 공정상의 소리를 담은 ASMR 영상을 선보인다. 액체괴물의 특성을 반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아이돌, 선생님, 대통령에까지 비유하는 영상도 만들어지고 있다. 

액체괴물을 판매하는 슬라임 코리아 대표는 “주요 고객층은 20대 대학생이나 회사원”이라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직접 만져보고 싶어서 구입한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던 장난감의 주 소비층이 달라질 만큼, 액체괴물은 유튜브 시대의 놀이문화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보여준다. 모두가 모이는 유튜브에서 어린이들의 문화가 성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터넷과 장난감이 결합된 새로운 놀이문화가 탄생한다. 무엇을 하든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태어나서부터 유튜브가 존재한 세대가 가져온 변화다. 
CREDIT 글 | 서지연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