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초능력을 쓸 때

2017.05.17 페이스북 트위터


최근 아이돌 산업은 판타지 세계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지난 15일에 발표된 걸그룹 트와이스의 타이틀곡 ‘Signal’은 멤버들을 초능력 소녀로 설정하는 한편 뮤직비디오에 외계인이 등장하고, 같은 날 컴백한 빅스는 동양의 이상향 중 하나인 ‘도원경’을 새 앨범 콘셉트로 삼고 있다. 22일 컴백 예정인 보이그룹 세븐틴은 앨범 공개 전 발표한 멤버별 개인 티저에서 현실 속 사람과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이 다르게 움직이는 등 곳곳에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집어넣고, 영상마다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눠지지 않는 소수가 갑자기 등장한다. 이들보다 앞서 공개된 걸그룹 드림캐쳐는 팀의 콘셉트에서부터 호러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고,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유닛 앨범 ‘Love & Evil’은 앨범 전체가 시간여행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를 통해 판타지적인 스토리를 내세운다. 신인 걸그룹 프리스틴은 데뷔 앨범 수록곡 ‘블랙위도우’를 뱀파이어 버젼으로 리믹스, 곡에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가 “요즘 온갖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일 중 하나”라고 할 정도다.

EXO는 아이돌 그룹에 판타지를 가미하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멤버들이 각각 다른 초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은 트와이스가 비슷하게 활용한 것처럼 멤버 각자에게 캐릭터를 부여할 수 있다. 이 캐릭터들이 모여 만들어나가는 스토리는 하나의 세계관이 돼 무대에서 적용될 수 있다. 캐릭터, 스토리, 더 나아가 세계관이 만들어지면서 팬들은 콘텐츠가 미처 밝히지 않은 것들을 상상하며 그 팀에 몰입한다. EXO는 데뷔 당시부터 팬들이 세계관을 해석하려 했고, 세븐틴의 이번 개인 티저 영상도 팬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판타지적인 요소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팀의 정체성이다. 정확히는 그것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팀만이 판타지를 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O의 캐릭터 설정은 각기 다르게 매력적인 외모의 멤버들에게 정말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성격을 부여했다. 트와이스는 ‘TT’ 뮤직비디오처럼 멤버들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든 ‘Signal’처럼 초능력 소녀가 되든 남자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려는 여자라는 캐릭터를 강조한다. ‘Signal’ 개인 사진 티저에서 쯔위가 주먹으로 책상을 부수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귀엽게 웃는 모습은 이 콘셉트의 의도를 보여준다. 초능력이 멤버 개개인의 특성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초능력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븐틴은 초현실적인 설정이 팀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팀명인 17과 멤버 수 13은 모두 소수고, 세븐틴의 앨범명은 ‘All’과 ‘Alone’ 어느 쪽으로도 읽히는 ‘Al1(one)’이다. 티저의 내용은 소수처럼 홀로 존재하는 멤버 개개인이 영상 마지막에 다른 멤버와 연결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세븐틴의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이하 플레디스)는 “영상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팬들의 영역”이라면서 “다만 세븐틴의 근본인 멤버들의 강한 캐미스트리를 팀의 발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플레디스에 따르면 앨범 타이틀곡은 영상 티저의 분위기를 이어 “‘Alone’이 ‘All’이 되기 전” 소년이 겪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고, 영상 티저는 이런 감정에 대한 분위기를 미리 제시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영상 티저의 설정은 다음 앨범에도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팀의 중요한 정체성인 캐미스트리가 판타지적인 설정을 통해 팀의 콘텐츠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앨범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판타지적인 콘셉트가 팀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팀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판타지를 찾고 다듬는 것이다.

EXO와 함께 콘텐츠를 통해 가상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성공한 보이그룹이 방탄소년단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학교 3부작’과 ‘화양연화’로 이어지는 그들의 스토리에는 초능력이나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앨범과 각종 영상, 또는 팬미팅과 콘서트를 통해 전달하는 콘텐츠는 반항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억눌렸던 소년들의 좌절과 그들간의 연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애초에 판타지 속 주인공이 아닌 교실 뒤편의 삐딱한 아이들로 출발한 방탄소년단은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간적으로는 학교 바깥으로, 시간적으로는 소년에서 청년이 되기 직전의 순간까지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었다. 기획사가 아이돌을 통해 정말로 만들어내야 할 판타지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Mnet ‘프로듀스 101’처럼 판타지의 정반대 편에 있는 아이돌이 소비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프로듀스 101’에서 특정 출연자를 지지하는 팬들은 방송 내용뿐만 아니라 TV 바깥에서도 그들을 추적, 실제 사생활과 인성까지 알아내려고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팬은 그것을 유리하게 해석하려 하고, 안티는 그들의 인기를 떨어뜨릴 꼬투리를 잡는다. 이것은 팬들이 출연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 아니면 망상, 또는 악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돌의 소속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이상의 판타지란 무엇인가. 그것이 곧 지금 기획사들이 Mnet, 또는 팬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경쟁 우위일 것이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