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과학적이며 정치적인 행진

2017.04.24 페이스북 트위터


워싱턴에서 여성 행진이 있었던 지난 1월 21일, 텍사스 대학교의 보건 과학 센터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조나단 버만은 레딧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고 있었다. 글의 제목은 “기후 변화에 관한 모든 레퍼런스가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삭제됐다”였다. 버만은 글에 달린 댓글 중 하나를 유심히 보게 된다. “워싱턴에서 과학 행진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댓글을 본 버만은 워싱턴에서의 과학 행진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 그는 MarchForScience.com이라는 도메인을 구매하고, 페이스북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심사숙고된 증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과학 행진은 이렇게 시작됐다.


과학 행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커졌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엔 5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4월 22일 워싱턴에서의 행진과 함께 공식적으로 전 세계 518곳에서 동시에 행진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현재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조직은 ’지구의 날 네트워크’라는 곳으로 매년 지구의 날 행사를 조직하는 비영리 단체이며,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회(AAAS)를 비롯해 미국 화학회, 신경과학회 등 100개가 넘는 과학 단체들이 이 행사를 지지한다. 당일에는 과학계의 유명 인사들이 발언하고, 티치-인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과학자들이 과학 행진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앞서 말했듯 크게는 “증거 기반의 정책 결정”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기후 변화는 거짓이 아니다. 백신은 효과가 있고, 백신 거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총기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만들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비롯해 과학 관련 정부 부처의 예산을 삭감한 것은 과학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행위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세부적인 주장들이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매우 정치적인 이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 행진을 비판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과학은 중립을 지켜야 하며,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비판은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행사를 기획하는 이들은 이 운동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행진 자체가 트럼프의 당선이 계기가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비판자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과학이 정치와 엮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외에 행정부에 대한 시위가 미래의 과학 연구비 펀딩에 있어서 행정부에 우호적이냐 아니냐를 보는 정치적 편 가르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나, 주최 측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는, 합리적인 비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네이처’는 과학 행진을 지지한다는 글을 통해 비판을 반박했다. “행진이 과학과 정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논의되는 수준 이상으로 이미 흐려져 있습니다. 정치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동시에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과학 행진에 참석하겠다는 지질학자 에밀리 니컬슨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상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가디언’은 과학 행진이 사회 참여를 책임으로 보는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을 불러냈다고 말하며, 이미 이 운동이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글을 쓰는 지금, 아직 4월 22일은 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CREDIT 글 | 윤지만(칼럼니스트)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