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사인회에 오면 모두 팬인가

2017.04.12 페이스북 트위터


최근 걸그룹의 팬 사인회에는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다. 한 남성이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안경을 쓰고 온 것만이 아니다. 몇몇 걸그룹 멤버들은 볼을 꼬집히고, 또 다른 걸그룹의 멤버는 외모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신 공격을 당했다. 보이그룹의 팬 사인회에서도 팬이 아이돌의 발언을 몰래 녹음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상한 선물을 주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걸그룹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려는 것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연상시킨다. 걸그룹 멤버들은 팬 사인회에서 스타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범죄의 위험에도 노출된다.

“**야, 돈 벌어야지.” 한 팬 사인회에서 팬이 자신이 준비한 의상을 걸그룹 멤버가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말은 걸그룹 팬 사인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다. 팬 사인회에 응모하기 위해 앨범을 샀으니 걸그룹 멤버에게 ‘돈 값’을 요구하는 무례함. 더 나아가서는 팬 사인회를 돈 내고 성범죄 혐의가 다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범죄자. 이들에게 걸그룹 멤버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다. 그들은 걸그룹 멤버들에게 돈을 낸 뒤 무례한 언행, 심지어는 범죄 행위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면 비난받을 여성혐오를, 이런 부류의 남성들은 팬 사인회라는 공개적인 행사 안에서 저지른다. 걸그룹 멤버는 팬이라는 이유로 어지간히 무례한 행동은 참아 넘길 수밖에 없다. 여자친구의 예린이 몰래카메라를 발견했을 때, 그는 범죄자의 안경을 곧바로 뺏을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눈을 칭찬하며 안경을 벗도록 유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돌은 자신의 추측이 틀릴 경우 팬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을 상황에 놓여 있다.

걸그룹 팬 사인회에 참여하는 남성 팬 중 이런 경우는 일부일 수 있다. 안경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올 범죄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한 걸그룹 팬 사인회에서 특정 멤버에 대한 인신공격이 있었을 때, 그 장소의 팬들은 그를 제지하는 대신 동조하거나 웃었다. 인터넷에서는 팬의 무례한 말에 운 걸그룹 멤버에 대해 “연예인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역시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와 같은 범죄나 무례한 언행에 대한 집단적인 자정 움직임 역시 없다. 대신 여자친구의 팬 사인회 사건에 대해 “몰래카메라가 팬 사인회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것과 무슨 차이냐”는 발언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한다. 여성들을 몰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던 성범죄 사이트 소라넷 수사와 폐쇄를 반대하거나 불가능할 거라고 장담했던 어떤 남성들의 반응이 걸그룹의 문제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최근 데뷔한 걸그룹 프리스틴의 소속사에서는 최근 팬 사인회에 오는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지를 냈다. 멤버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무리한 요구는 자제하며, 볼을 꼬집는 것 같은 직접적인 접촉은 삼갈 것. 또한 멤버에게 전달할 물건은 스태프에게 주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자제해줄 것.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지킬 것이 있다는 최소한의 당부다. 그러나 많은 걸그룹 소속사는 이런 입장조차 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팬 사인회는 수익뿐만 아니라 걸그룹의 인기를 증명할 수 있는 음반 판매량과 직결되는 행사다. 많은 소속사는 구매력과 열성을 동시에 갖춘 이 팬들에게 최소한의 선 긋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사이 팬 사인회 참가자 중 누군가는 아이돌에게 반말을 하고, 돈 벌려면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며, 안경에 몰래카메라를 달았다. 그러니 정말 구차할 만큼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걸그룹 팬 사인회는 걸그룹 멤버를 볼 수 있는 자리다. 하지만 그것이 돈을 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는 그냥 범죄다. 이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가.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