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프로듀서님, 나야 나!

2017.03.15 페이스북 트위터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보이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이하 [시즌 2])의 테마곡 ‘나야 나’는 걸그룹 멤버를 뽑았던 지난 시즌의 노래 ‘Pick Me’와 달라 보인다. ‘나야 나’ 역시 가사에 ‘Pick Me’를 집어넣어 연속성을 강조하지만, ‘나야 나’의 화자는 ‘Pick Me’와 달리 애정을 고백하는 상대에게 반말을 한다. 또한 ‘Pick Me’가 출연자들을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로 규정하는 데 반해, ‘나야 나’는 제목부터 출연자를 각각의 개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가사 속의 남자는 스스로를 ‘오늘 밤의 주인공’이라고 규정한다. 여성 출연자들은 꿈을 꾸기 위해 ‘Pick Me’를 외치는 반면, 남성 출연자들은 이미 주인공인 자신을 ‘Pick Me’하라고 한다.

‘Pick Me’는 화자를 소녀로 규정하고, 좋아하는 대상에게 ‘안아줘요’라며 상대의 사랑을 원한다. 반면 ‘나야 나’는 ‘미쳤어 내게 빠졌어’나 ‘네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처럼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한다. 인기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가사와 캐릭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Pick Me’와 ‘나야 나’에는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전형적인 가사가 담겨 있다.  지난 시즌과 똑같이 Mnet [M Countdown]을 통해 공개된 ‘나야 나’의 첫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후렴구 부분에서 팔을 쭉쭉 뻗으며 격한 동작을 소화하기도 한다. 인기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차이점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프로듀스 101]이 아니라면 말이다.

[시즌 2] 홈페이지에 올라온 홍보 동영상에서, 출연자들은 ‘국민 프로듀서님’에게 자신의 한 표를 호소한다. ‘나야 나’의 전형적인 보이그룹 캐릭터는 이렇게 [프로듀스 101]의 틀과 부딪친다. ‘나야 나’가 EDM 스타일의 편곡을 들고 나오고, 출연자가 모두 똑같은 춤을 추는 것은 ‘Pick Me’와 똑같다. 하지만 안무의 전반부는 비트에 일일이 손과 발이 따라가야 하는 반면, 후반은 보이그룹이 흔히 보여주는 큰 동작 위주다. 안무의 흐름이 계속 바뀌는 만큼 출연자들이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제일 높은 A 등급 출연자들도 동작이 일치되지 않거나 춤 선이 각자 다를 만큼 보이그룹이 보여줘야 할 장점이 사라졌다. 지난 시즌 [프로듀스 101]과 보이그룹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섞으면서, 오히려 보이그룹으로서 제대로 어필해야할 부분은 놓친다.

‘나야 나’ 무대의 엔딩에서 Mnet [슈퍼스타 K]에서 ‘힙통령’으로 화제가 됐던 장문복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Pick Me’의 엔딩에는 전소미-임나영-최유정이 등장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외모의 출연자들을 강조했다. 반면 ‘나야 나’에서 장발을 한 채 입술을 살짝 깨문 표정을 보여준 장문복은 공개 후 어떤 의미로든 웃음을 일으켰다. 보이그룹은 외모와 별개로 명확한 캐릭터를 통해 인기를 얻기도 한다. 캐릭터가 명확한 장문복도 그런 의도로 등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남성은 보이그룹과 리얼리티 쇼,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모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성장서사를 부여받는다. 잘생기지 않아도 성공한 남성 연예인의 예는 여성에 비해 훨씬 많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프로듀스 101]을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 이 쇼의 타겟 시청자층은 H.O.T 시절부터 보이그룹의 팬덤 활동을 학습한 여성들이다.

지난 시즌 제작진은 여성 출연자들을 쉴 새 없이 울게 만드는 가학적인 상황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출연자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돌파해 나가면서 표를 얻었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100여 명의 출연자들이 걸그룹 데뷔를 꿈꾸며 온갖 스트레스를 견디며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그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와 별개로, 지난 시즌의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 시장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반면 남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늘 보아온 것이다. 다른 것은 그들을 평가하고 표를 줄 ‘국민 프로듀서’의 다수가 여성일 것이라는 점뿐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표를 달라며 절실하게 매달리는 것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나야 나’에서 이런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 보이그룹의 캐릭터를 답습하고, 오히려 보이그룹이 보여줘야 할 요소들은 놓친다.

물론 제작진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카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야 나’만을 보면 제작진이 그리는 보이그룹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출연자들은 군무를 못 맞추고, 무대의 엔딩은 감동보다 웃음에 방점을 찍었으며, EDM 스타일의 편곡과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가사는 데뷔 전의 보이그룹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진은 이래도 리얼리티 쇼만 하면 보이그룹이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보이그룹의 소비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한 표를 얻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할 때일 텐데 말이다. 참고로 2008년에 데뷔한 샤이니는 지금도 군무를 칼같이 맞추고 있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