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 왔다

2017.02.15 페이스북 트위터


KBS [김과장]의 TQ그룹 경리부 김 과장, 김성룡(남궁민)의 꿈은 10억을 모아 덴마크로 가는 것이다. 덴마크가 부정부패 지수가 가장 낮아서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해볼 법한 상상이다. 다만 김성룡은 회계를 맡은 회사가 단 한 번도 세무조사에 걸리지 않게 할 만큼 회계의 천재다. 그는 회사 돈을 ‘삥땅’쳐서 모은다. 하지만 챙겨도 티나지 않을 만큼만 챙기고, 뒤탈이 없도록 주변 사람들도 챙긴다. 덕분에 몇 년 동안 검은 돈을 만졌지만 모은 것은 2억 남짓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절약해야 하니 월세 몇만 원을 아끼려 노력한다. 평범한 직장인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졌고, 그들보다 돈은 빨리 모은다. 하지만 꿈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식은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혹시 가면 같은 거 쓰고 싶지 않아요?” 김성룡과 함께 일하던 광숙(임화영)이 그에게 한 말은 김성룡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미한다. 평범한 직장인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졌지만, 직장인과 같은 정서를 가진 채 직장에 들어간 슈퍼 히어로. TQ그룹에 ‘삥땅’치러 입사한 그는 처음에는 우연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의지로 ‘의인’이 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TQ그룹의 비리가 하나씩 밝혀진다. 그러나, 그가 TQ그룹 회장의 망나니 아들에게 망신을 주고, 계열사 TQ그룹의 노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회계를 잘해서가 아니다. TQ그룹의 내막을 알게 된 그는 회사에서 해고되기를 원한다. 덕분에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회사에 억지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 관둬도 먹고살 능력은 있다. 직장인은 그 순간 직장에서 ‘의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 

그 옛날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MBC [인간시장]의 장총찬(박상원)부터 최근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 사부(한석규)까지, 한국 드라마의 ‘의인’들은 비범한 능력과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지곤 했다. 반면 김성룡은 직장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고, 직장인들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대신 해준다. 회사의 경리를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임원이 법인 카드를 이상한 데 쓰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소원이 될 수 있다. [김과장]에서 TQ그룹의 매출과 계열사를 마치 실제 회사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김성룡 이상으로 TQ그룹 직원들의 일상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이유일 것이다. 경리부장은 유학 간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빈방에 월세를 놓으려 하고, 경리부 대리 윤하경(남상미)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윗사람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참아내야 한다. 그 옛날 KBS [TV손자병법]에서 직장인은 안정된 생활을 당연시 여기는 존재였다. 반면 tvN [미생]에서는 비정규직이 주인공이었다. 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김과장]은 상사의 기분에 따라 일상이 좌우되는 직장인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을 위한 슈퍼 히어로를 탄생시켰다. 

김성룡은 “쓰다 버리기” 편하다는 이유로 TQ그룹에 입사할 수 있었다. 회사에 능력을 주고 월급을 받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 버려질지 모를 존재. 검사 출신으로 기세등등한 TQ그룹의 서율(준호) 이사도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박현도 회장(박영규)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당장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메인 테마곡 ‘Must Be The Money’의 가사대로 “너무 멀리 왔”다. 가장 직장인과 멀어 보이는 설정을 가진 캐릭터도 직장인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이것들을 바탕으로 장르적 재미를 안긴다. TQ그룹의 사람들이 속내를 감추고 서로에 대해 캐내는 과정은 직장인이라면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김과장]은 그것을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벌이는 첩보전처럼 그려내기도 한다. 톱스타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지도 않고, 특수효과나 해외 촬영을 위해 큰 제작비를 들이지도 않는다. 대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직장인의 일상을 그들이 즐거워할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김과장]은 지금의 드라마가 대중의 오락으로 남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리고 그사이 [김과장]에는 2017년의 한국이 기록된다. 황당해 보일 수도 있는 김성룡의 활약을 보다 보면 하루 16시간까지 일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에 걸린 택배기사, 직원들에게 화장실 사용법에 대해 잔소리를 해야 하는 청소반장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제작진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가 대중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오락물이 될수록, 오히려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김성룡의 활약보다 TQ그룹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 산만해지기도 하고, 정작 김성룡은 TQ그룹 입사 이후 회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과장]은 TQ그룹 노조가 위기를 벗어나는 6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16.7%(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2017년 현재, 한국 드라마의 대중성에 대한 또 다른 정의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