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자라지 않는 소녀들

2017.02.07 페이스북 트위터


레드벨벳의 전작들이 그랬듯, ‘Rookie’의 뮤직비디오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Dumb Dumb’이나 ‘러시안 룰렛’보다 더 뒤죽박죽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쨍한 컬러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과장된 멤버들의 의상, [나니아 연대기]와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듯한 장면들, 영미권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어린이 쇼의 무드 같은 키치한 연출을 보고 있으면 곡 자체의 멜로디나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다. 반복되는 “Rookie rookie my super rookie rookie boy”와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같은 후크만이 오로지 부각된다. 실제의 BPM이 얼마인가와 관계없이 언제나 2배속 한 듯 들뜬 분위기의 레드벨벳 표 곡과 비주얼 콘셉트의 리듬이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다만, 이것이 곧 콘텐츠 전체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Rookie’의 곡과 비주얼은 그야말로 ‘혼란스럽다’거나 ‘예뻐 보인다’는, 느슨하게 뭉뚱그려진 이미지만을 제시한다.

사랑에 들뜬 소녀이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당혹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 넘치거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레드벨벳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엽을 감아야만 돌아가는 인형 같은 콘셉트 또한 데뷔곡 ‘행복’부터 지난 ‘러시안 룰렛’까지 레드벨벳이 꾸준히 다듬어온 것이었다. 특히 수수하고 친근한 소녀와는 저 멀리 동떨어진 레드벨벳의 스타일링은 접근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고집스러운 소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령 ‘Ice Cream Cake’의 뮤직비디오에서 시도한 컬러렌즈와 탈색한 머리카락은 물론, 패션필름의 한 장면처럼 그저 여유롭게 이국적인 풍경 속을 걸어 다니는 멤버들의 모습이나 ‘Dumb Dumb’의 마냥 귀엽지만은 않은 말괄량이 삐삐 코스튬 같은 것들. 무해하거나 수동적이지 않은 여성상을 그려내긴 하지만 다른 걸 그룹과 완전히 차별화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노래에,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섬뜩한 비주얼이 더해져 팀의 고유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독보적으로 공고해질 수도 있었을 레드벨벳의 세계는 그러나, ‘7월 7일’과 ‘러시안 룰렛’을 거치며 다소 방향을 잃었다. ‘Dumb Dumb’ 다음으로 내놓은 ‘7월 7일’은 들뜬 분위기의 ‘레드’와 반대되는 차분한 ‘벨벳’ 콘셉트의 일부라 이해한다 하더라도, 우아함이 돋보이던 ‘Be Natural’이나 ‘Automatic’과는 달리 애잔함과 처연함에 가까운 정서를 전달했다. 그래픽을 활용해 알쏭달쏭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레드벨벳 특유의 비주얼 작업과 제대로 맞아떨어질 리 없는 곡이다. 게다가 ‘러시안 룰렛’에서는 멤버들에게 부르마에 가까운 체육복이나 테니스 스커트 같은 의상을 함께 입히며 당시 대부분의 걸 그룹이 따르고 있던 무해한 걸 그룹 판타지에 합세하기까지 했다. 현재 아이돌 산업에서 한 팀 한 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때문에 한두 번의 실수는 팀의 전체 서사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야기와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요즘 아이돌 그룹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EXO, 그리고 설리 탈퇴 이후의 f(x)를 성공적으로 재론칭한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레드벨벳에게는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보여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이는 팀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기획의 부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사이, SM이 아닌 다른 기획사들도 레드벨벳과 유사한 무드의 비주얼 디렉팅을 보여준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오브제로 비밀스러운 소녀들의 세계를 구축한 비주얼 콘셉트를 보고 싶다면, 러블리즈와 오마이걸은 물론 우주소녀라는 선택지까지 존재한다. 갈팡질팡하는 동안 레드벨벳 고유의 캐릭터는 흐릿해졌으며, 가장 큰 강점이었던 비주얼은 다른 팀에서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레드벨벳의 전작들보다 유난히 ‘Rookie’의 단점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에도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비주얼은 키치하고 복잡하지만, 이미 레드벨벳은 물론 걸 그룹들 사이에서 수십 번은 본 듯한 기시감을 낳는다.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Rookie’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포함한 콘텐츠 전체를 이끌어가기에 존재감이 약하다. 결국 레드벨벳은 비슷비슷한 배경에서 비슷비슷한 느낌의 코스튬만을 갈아입으며 자라지 않는 인형 같은 소녀들로 남아 있다. ‘Rookie’의 가사처럼, 이것이 레드벨벳이라는 “느낌적인 느낌”만을 남긴 채로.
CREDIT 글 | 황효진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