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크리스마스를 함께할 음악들

2016.12.12 페이스북 트위터
올 크리스마스는 특히 캐럴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다시 음원 사이트에서 작년의 플레이리스트를 꺼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신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크리스마스의 음악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No. 1 in E Minor, Op. 39: I. Andante ma non troppo - Allegro energico
눈과 얼음의 나라 핀란드의 국민음악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아무래도 작곡가의 고향 풍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가 있지만, 한겨울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듣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그중 1번 교향곡의 1악장은 한파가 찾아온 청명한 아침에 막 퍼지기 시작하는 햇살을 음미하며 들어보자. 한겨울 속 꽁꽁 얼어붙은 황량한 눈밭 위에 선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초반부를 듣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까지 듣게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글. 오경아(만화가)


빈스 구아랄디 트리오(Vince Guaraldi Trio), ‘Christmas Time Is Here’
평소 클래식부터 EDM까지 음악을 편식 없이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캐럴만큼은 경건하거나 고요한 곡을 선호한다. 그래서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주인공인 미국 만화 [피너츠] OST 중 ‘Christmas Time Is Here’를 매해 챙겨 듣는다. 시끄럽고 번잡한 연말 분위기보다는 차분히 연말 특유의 온기를 즐기고 싶을 때 이만한 곡이 없다. 빈스 구아랄디 트리오가 연주한 이 앨범에는 추천 곡 외에도 좋은 캐럴이 많이 담겨 있다. 재즈풍 캐럴 음반이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화음은 하나도 없다. 어렵지 않은 멜로디 라인으로 차분하면서도 약간은 상기된 듯한 감정선을 아주 잘 이끌어준다. 그리고 OST를 들으며 실수투성이지만 늘 엉뚱한 도전을 일삼는 매력 덩어리 찰리 브라운 캐릭터까지 연상할 수 있어 여러모로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며 듣기에 참 아름다운 곡이다.
글. 박예원([동·남아프리카 여행백서] 저자)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 ‘For The Love Of You’
탄신일로 기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따뜻해지고 싶은 기념일이 되어버린 크리스마스. 유독 혼자 보낸 기억이 많아 여느 겨울밤과 다를 것 없던 이날 저녁은, 녹녹한 영화 한 편과 씁쓸한 와인 한 잔 기울이며 채우곤 했다. 제목부터 달달한 이 노래를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처음 만났다. 한 남자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진부한 스토리인데, 이 노래는 주인공인 알피(주드 로)가 절친한 친구의 애인과 위험한 순간을 보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흐른다. 로맨스 판타지를 한껏 끌어올리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며 장면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몸을 하늘하늘 흔들고 싶어진다. 거리를 장악한 수많은 커플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이날만큼은 감미로운 클리셰가 필요할지도.
글. 조문선([Don’t Panic Seoul] 디자이너)


램찹(Lambchop), ‘2B2’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 앞에 걸어둔 크리스마스 조명을 2월 31일이 되어서야 떼어냈다(Took the Christmas lights off the front porch February 31st).” 빅 체스넛이라는 음악인이 있었다. 18세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휠체어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온 그는 2009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숨을 거뒀다. 45세였고, 자살이었다. 밴드 램찹의 리더 커트 와그너는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체스넛의 죽음 이후 한동안 음악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만든 곡이 ‘2B2’다. ‘둘이라는 것(to be two)’에 대해 회상조로 노래하는 이 곡에는, 크리스마스 날에서 멈춰버린 시간으로부터 힘겹게 헤어난 자의 심경이 애잔한 기타 스트링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린 겨울날에 듣기 좋은, 아름다운 이별 송가다.
글. 김영진(남해 ‘생각의 계절’ 운영자)


닐스 프람(Nils Frahm), [Screws]
크리스마스에는 닐스 프람의 [Screws] 9곡 전체를 듣는다. ‘You’로 시작하여 ‘Me’로 끝나는, 30분이 채 안 되는 피아노 솔로 음반이다. 극도로 조용하고 또 단조로운데 이상할 정도로 눈이 내리는 풍경과 어울리고, 또 겨울과 그리고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한가운데에서 듣기 좋다. 왼손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양손 9개의 손가락으로 연주, 녹음했다는 사실이 작은 신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부상을 입은 손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규모를 줄여 탄생한 곡들에는 ‘천천히 조용하게 압도하는 힘’이 있다. 신나는 캐럴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8번 트랙 ‘Si’가 꼭 필요한 순간도 있다. 전곡을 닐스 프람의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다.
글. 이로(유어마인드, 언리미티드 에디션 운영)


닉 하킴(Nick Hakim), ‘I Don’t Know’
무슨 일이 생기기보다 생기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다. 떠들썩하게 잔을 부딪치며 들뜬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그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연말도 있는 것이다. 잔을 들며 노래를 열지만(“Here’s a toast to you”) 닉 하킴의 ‘I Don’t Know’는 반짝이는 트리 장식과 무리 속의 건배보다는 집에 혼자 돌아오는 택시 뒷자리의 쓸쓸함에 어울릴 곡이다. 킹 크룰을 브루클린으로 옮겨놓은 느낌을 주는 이 인디 뮤지션의 목소리는 채도가 낮고, 질감은 거칠다. 간결한 연주 주위의 여백으로 코러스가 미약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올해는 이 정도 따스함에 기대본다. 새해에도 여전히 어디로 향해 갈지 모르겠지만, 불확실함과 슬며시 포옹할 힘이 난다.
글. 황선우([W Korea] 피처 디렉터)


시규어 로스(Sigur Ros), ‘Hoppipolla’
작은 집 거실의 테이블에 단둘이 마주 앉아 대화할 때도, 여럿이 모여 병을 들었다 놨다 마셔댈 때도, 플레이리스트에는 늘 이 노래가 있었다. 말미에 이르면 꼭 모두가 두 팔을 휘저으며 당치 않은 ‘희망어’로 따라(?) 부르게 되는 것. 내게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뺨치게 낭만적인 기억들을 소환하는 소중한 곡이다. 마치 요정의 신음처럼 내지르는 욘시의 보컬에는 인간 세상의 속 좁은 사랑이나 미움 따위 넘어서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신비로운 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 사운드는 일희일비 매달리는 일상의 대소사를 티끌처럼 만들어버린다. 이 곡이 지닌 포용력과 따뜻함은 깊숙한 곳에 갇힌 긍정적인 기억, 혹은 내면의 자유까지 해방시키는 느낌이다. 올 한 해 또 ‘그렇게 살았구나’ 싶다가도,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내년은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게 된다. ‘똑같은 한 해가 되면, 뭐 어때?’라는 낙관까지 동반하는, 그런 희망 말이다.
글. 강경민(프리랜스 피처 에디터)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Moon Blue’
11년 전 듣자마자 좋았고, 지금까지도 좋다. 스티비 원더가 [A Time To Love]라는 앨범에 노래 제목은 ‘Moon Blue’로 지었으니 좋지 않기도 힘들다. 첫 건반 연주가 시작되면서부터 선명하게 그려지는 밤, 블루의 이미지는 스티비 원더가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 생각하면 진정 기적처럼 느껴지고, 역사적인 천재가 역사적인 대가가 되는 사이 심지어 더 깊어진 목소리는 러브 발라드의 달콤함 이면에 있는 쓸쓸함까지 전한다. 겨울밤, 홀로 있는 순간의 그 차가운 단맛.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만 간다.
글. 강명석


존 브라이언(Jon Brion), ‘Little person’
기억나지 않는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됐다. 처음에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하루가 마무리 지어지는 느낌이었고, 어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행복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캐럴이 지겹다면 들어보기를. 다 내려놓고 한 해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글. 오혁(밴드 혁오 멤버)


브라이트 아이즈(Bright Eyes), ‘First Day of My Life’
크리스마스의 의미 가운데 하나로 가족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대한 온갖 상징으로 가득한 캐럴이 결국 바로 그 ‘함께함’을 위한 것이라면, 브라이트 아이즈의 ‘First Day of My Life’는 그 순간에 빠질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존 카메론 미첼이 만든 비디오와 함께하길 바란다. 비디오 속에서 다양한 커플, 가족, 혹은 혼자 남은 이들은 각자 헤드폰을 쓰고 이 노래를 듣는다. 카메라는 그저 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단지 너른 시선을 가지는 것만으로, 존 카메론 미첼은 설렘으로 가득한 노래를 모든 종류의 사랑이 발화하는 순간, 혹은 그 순간을 기억하는 기회로 바꾸어 놓았다. 크리스마스가 늘 그런 것처럼. (화질은 용서하시라, 하지만 이건 2006년 당시 유튜브가 허용하던 최고 화질이다.)
글. 서성덕(음악 평론가)



어거스트 번즈 레드(August Burns Red), ‘Sleigh Ride’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세대를 초월해 전 세계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시즌 송’이다. 그중에 한국어 가사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멜로디만 익숙한 고전 캐럴 중 하나가 이 ‘Sleigh Ride’인데, 이를 미국의 중견 크리스천 메탈코어 밴드인 어거스트 번즈 레드가 헤비함은 조금 덜어내고 재지한 어프로치를 곁들인 신나는 모던 메탈 연주곡으로 아주 훌륭하게 바꿔 놓았다. (노래는 스크리밍 대신 불 뿜는 두 대의 기타가 대신한다. 애초에 우리는 따라 부르기도 애매하니 이쪽도 나쁘지 않다.) 당장에라도 썰매, 썰매가 없다면 비료 포대라도 붙잡고 동네 뒷산에 올라가고 싶게 만드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예상된다면 플레이리스트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곡.
글. 박진경(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PD)


CREDIT 글 | 오경아, 박예원, 조문선, 김영진, 이로, 황선우, 강경민, 강명석, 오혁, 서성덕, 박진경
디자인 | 고세민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