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사부의 시간

2016.12.05 페이스북 트위터


“내 구역에선 하나밖에 없어.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닥터 부용주, aka 김사부(한석규)는 말한다. 수술 성공률 97%,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전설의 외과의사, 국내 유일의 트리플 보드(3과 전문의), 그러나 악인에게 모함당해 초야에 묻혀 지내며 속세의 인연들과 거리를 두고 난세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메스를 불사르는 이 고독한 무사형 히어로에게 어울리는 제목은 ‘낭만닥터’보다도 오히려 ‘신의라 불린 사나이’일 것이다. 김사부의 제자 강동주(유연석)의 자못 비장한 내레이션에 이어,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펼쳐지는 사랑, 배신, 음모, 생사의 드라마는 엄청난 속도와 함께 ‘막장’의 경계를 오가지만 다행히 이 구역은 한석규의 것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최근 주중 미니시리즈 가운데 드물게, 그리고 드라마의 전개만큼이나 빠르게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데뷔 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이 들지 않은 목소리와 명확한 발성, 안정된 호흡은 한석규, 그리고 김사부의 강력한 무기다. 강동주의 손목을 자르겠다며 위협할 때도, 신 회장(주현)의 수술을 걸고 의뭉스런 태도를 보일 때도, 제자 윤서정(서현진)의 목에 낫을 들이대고 인질극을 벌이는 남자 앞에서 수술을 이어갈 때도 김사부는 떨지 않는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수준의 설정과 빠른 속도감 사이, 비어 있는 서사나 감정선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집중시켜 메우는 것은 대사의 타이밍과 얼굴의 근육 떨림 하나까지 정확한 한석규의 존재다. 십수 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자신의 마음이 지옥일지언정 백성의 고통을 짊어지려 하는 왕으로서 무게감을 증명한 것처럼, 철저한 오락물이라 할 수 있는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도 그는 이 아슬아슬한 세계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떠받치고 젊은 배우들과 팽팽하게 맞서 호흡한다.

한석규는 과거 “배우라는 일이 어떨 땐 너무 하찮게 느껴진다. 내가 했던 작업이 그렇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공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힘들다. 그래도 결론은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겠다는 거다. 이게 참 쉽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함께 연기하는 후배들에게 자주 던지는, “왜 배우가 됐냐?”는 질문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끼고 싶어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한석규가 스스로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언제나 명작이, 히트작이 나올 수는 없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해 나가며 어느 순간 기어코 관객의 시선을 붙들고 마는 것은 배우의 집념이다. 영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었던 남자가 20년이 지나 ‘사부’가 되는 동안에도 잃지 않은 것이다.
CREDIT 글 | 최지은
사진 | SBS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