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타가 올여름에 가져온 것

2016.06.29 페이스북 트위터


걸 그룹 씨스타의 노래 속 주인공에게 행복한 여름은 끝났다. ‘Touch my body’에서 “넌 내 곁으로 와 내가 준비한 wine 달콤한 chocolate 좀 부드럽고 때론 뜨거워지는 너만을 위한 my pool”이라며 상대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고, ‘Shake it’에서 “너만을 유혹하는 춤 심장에 매력발산 중”이던 여자는 ‘I Like That’에서 “남자는 똑같다는 게 그 말이 이제 이해돼”라며 분노를 쏟아낸다. ‘I Like That’의 뮤직비디오에도 태양 아래 남자들과 활기차게 놀던, 워터파크 모델과 같던 씨스타는 없다. 대신 부채질을 하던 다솜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자들만이 모여 때로는 분노하거나, 때로는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씨스타가 여름에 돌아오기까지 1년 동안 여자친구와 트와이스가 차례대로 씨스타처럼 음원차트 1위를 롱런하는 ‘음원강자’의 자리에 올랐고, Mnet [프로듀스 101]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결성된 걸 그룹 I.O.I는 데뷔 준비 중이던 보다 어린 걸 그룹 연습생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걸 그룹 멤버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동시에 소녀를 바탕에 둔 콘셉트의 팀들이 유행이 된 상황에서 씨스타의 선택은 후발주자들과 확연히 달라 보인다. ‘끈’의 가사는 보다 직설적인 설명이다. “순수하지 순진하진 않”고, “어려 보이지 어리진 않”다고 자신을 정의하는 여자가 “새까맣게 녹여 먹는 초콜릿 껍질 벗겨 맛보면 넌 나만 찾게 될걸”이라며 다른 해석이 끼어들 여지도 없을 만큼(이 부분을 부르는 멤버는 공교롭게도 효린이다) 직접적으로 섹스를 언급한다. 씨스타는 성인 여성으로서, 소녀 콘셉트의 걸 그룹이 다룰 수 없는 영역에 자리한다. 섹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고, 남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면서 씨스타는 그들의 장점을 상당 부분 포기한다. ‘Touch my body’의 다리처럼 몸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춤을 추지 않고, 뮤직비디오에는 더 이상 밝은 태양 아래서 탄탄한 몸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실내에서 중국풍의 의상과 세트를 통해 보다 신비로운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네 멤버가 함께 누워 있거나 뛰어가는 모습으로 그들의 관계에 대한 상상을 유도한다.



그러나 씨스타의 타이틀곡은 한국 걸 그룹의 범위 바깥이라 해도 좋을 가사의 ‘끈’이 아니라 ‘I Like That’이다. 그들은 타이틀곡에서 자신들의 강점인 탄탄한 다리 라인을 부각시킬 수 있는, 원피스 수영복에 가까운 옷을 입은 채 뮤직비디오에서 다리를 강조한 포즈로 누워 있다. ‘I Like That’의 후렴구 “니가 좋아 사랑해 널 사랑해”는 노래 속 남자가 화자에게 한 “올해 들은 말” 중 “최고”인 동시에 결국 주인공을 상처 입힌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씨스타는 이 부분을 강렬하게 소화하던 전반부와 달리 가녀린 목소리로 소화한다. 후렴구가 나오는 순간 우선 여자의 “니가 좋아 사랑해 널 사랑해”를 들리게 한 뒤, 거기에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장치를 마련한다. 씨스타는 ‘I Like That’을 통해 과거와는 반대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줘 왔던 요소들을 최대한 담으며 과거의 그들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아예 시선 둘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뮤직비디오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곡 역시 중국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는 노골적인 섹스어필의 느낌을 지우고, 멤버들은 강렬하게 자기감정을 쏟아낸다. 그러나 후렴구는 가녀린 목소리로 남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한 여성을 등장시키면서 그것을 중의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했고, 후반부에는 씨스타가 늘 그러했던 것처럼 시원하게 신나는 멜로디를 배치한다. 천으로 다리를 가리고 등장해, 중반부터 가려져 있던 다리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I Like That’이 기존의 씨스타에 대한 유지와 변화 사이의 화학적 절충이라기보다 물리적 배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아주 놓을 수도 없다. 그때 내놓을 수 있는 대답 중 하나는, 그것들을 전부 늘어놓는 것이다. 

‘I Like That’은 점유율이 가장 높은 음원사이트 멜론 기준으로 음원 발표 직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당일 낮 시간에는 1위를 차지했다. 또한 Mnet [쇼 미 더 머니 5]의 곡들이 차트를 휩쓰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이 곡들 사이에서 순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1년 사이 걸 그룹 시장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상업적으로 볼 때 ‘I Like That’이 성공적인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이 남았다. 시장의 변화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걸 그룹이 갑자기 캐릭터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필하던 부분은 최대한 남겨두려 했다. 그 결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같은 것을 다 집어넣은 결과물이 남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먹힌다. 무난한 변화와 무난한 결과. 지금 많은 걸 그룹들이 콘셉트를 선택할 때 만날 수 있는 가능성과 염두에 둬야 할 한계. 올여름의 씨스타는 그들이 속한 산업의 표준값과 마지노선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올해에는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노래가 나오지 않고 있다. 


CREDIT 글 | 강명석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