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이라는 권력

2016.06.27 페이스북 트위터


이번만큼은 전현무가 억울할 만하다. 지난 6월 1일 방영한 tvN [수요미식회] ‘평양냉면 2탄’ 방송에서 ‘함흥냉면파’를 자처하는 그는 이럴 거면 함흥냉면에 대해서도 2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에게 “할 게 뭐 있다고 2탄을 해요. 다 비슷비슷한 맛인데”라는 핀잔을 들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한 어느 정도의 역할극일 수 있다. 하지만 미식의 즐거움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 엄연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전통음식을 폄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 평양냉면이 주제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평양냉면을 기준으로 남의 취향을 깎아내리는 건 그보다 전인 5월 21일 자 [조선일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매체의 한현우 기자는 ‘냉면 예찬’이라는 글에서 “다시는 젊은 후배들과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미각(味覺)만 아직 미성년에 머물러 있는 그들”이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는 함흥냉면에 대해선 존중했다). 이런 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은 6월 11일에 방영한 O’live [2016 테이스티로드]에서 폭발한다. 게스트로 나와 평양냉면을 소개한 래퍼 딘딘과 그가 속한 ‘평사모’ 회원들은 MC인 김민정과 유라에게 “비빔냉면은 냉면의 배신”(딘딘), “식초를 치다니 되게 실망이다”(임상혁 프로듀서)라고 훈계했다. 만든 사람은 냉면집 주인인데 왜 본인들이 잘난 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건 종종 당사자들에겐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

수많은 별미 중에서도 평양냉면이 유독 대단한 음식이라고 내세우는 근거는 다들 대략 비슷하다. [수요미식회]에서 황교익은 평양냉면에 대해 “감각을 집중해서 먹어야 하는 맛”이라고 말한다. 처음 먹을 땐 싱겁지만 익숙해질수록 시원함과 감칠맛이 느껴지는 평양냉면 육수 특유의 맛 때문이다. “냉면을 먹으며 이 맛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울 지경”이라는 한현우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여 황교익은 자신 있게 말한다. “경지에 올라야 아는 맛”이라고. 평양냉면의 맛이 미묘한 디테일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맛의 우위를 나누는 이유라면 미식의 최고 경지는 맹물에서 맛을 구분해내는 워터 소믈리에일 것이다. 맛있을까? 해당 방송들에서 강조한 세 번 네 번 먹어야 아는 맛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평양냉면에 익숙해지기 위해 경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까르보나라도 처음 먹으면 고소함 대신 느끼함만 느끼기 십상이다. 보통 이 경우 까르보나라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평양냉면을 맛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선 맛을 모른다고 한다. 음식 취향의 문제는 유독 평양냉면에 있어서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문제가 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권력이다.


앞서의 세 가지 사례에서 평양냉면만 지우면 흥미롭게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력의 비대칭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수요미식회]에서 황교익은 전문가의 권위로 전현무의 미각을 폄하했다. [조선일보] 칼럼에서 한현우는 선배로서 젊은 후배들의 미각을 미성숙하다 평했다. [2016 테이스티로드]에서 딘딘과 남성들로만 이뤄진 ‘평사모’ 회원들이 미식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여러 맛집을 돌아다니는 두 여성 MC를 가르치는 건 전형적인 ‘맨스플레인’ 상황이다. 딘딘은 MC들과의 첫 만남부터 말한다. “평양냉면을 안 드셔보셨을 거예요. 먹어봤어도 맛을 모르고 먹었거나.” 상당수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평양냉면에 맛을 못 느끼거나 식초나 겨자를 치는 것에 마치 본인이 모욕당한 듯 화를 내지만, 사실 정말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건 평양냉면이 아닌 그들 본인이다. 내가 좋아하고 옳다고 믿는 룰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만나던 여자가 냉면을 안 먹어서 안 만나겠다고 선언했다던 ‘평사모’ 회원 래퍼 빅트레이의 사연처럼, 이것은 이미 맛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교수는 1999년 [중앙일보]에서 연재한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서 평양냉면의 원조 옥류관에서 직접 들은 냉면 먹는 법을 소개한다. “먼저 식초를 꾸미에다만 뿌리고, 간장은 국수오리(사리)에 치며, 겨자는 국물로 푼다. 그리고 꾸미를 살살 무너뜨려 넓게 퍼지게 한 다음 국수오리를 뒤집으면서 저어야 한다.” 원조의 맛, 고유의 맛이 꼭 더 낫다는 법도 없지만 정작 배타적인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지키는 것은 원조가 아닌 자신들이 믿는 하나의 이데아일 뿐이다. 맑은 육수와 순도 높은 메밀로 이뤄진 순수한 이데아. 그렇기에 식초나 겨자를 치는 건 취향의 가미가 아닌 오염이며, 평양냉면이 아닌 비빔냉면이나 함흥냉면은 그 자체로 ‘비(非)-냉면’이 된다. 심지어 황교익은 살얼음 육수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을밀대의 평양냉면을 냉면으로 볼 수 없다고도 했다. 이 기시감 느껴지는 배타성은 평양냉면의 문제가 아닌 동시에 평양냉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쥔 쪽의 취향이 이데아이자 세상의 디폴트값이 된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부족하거나 잘못됐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평양냉면 육수를 들이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름 돋는 이 여름의 서늘한 풍경 아닐까.
CREDIT 글 | 위근우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