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은, 진심이었거든

2016.02.22 페이스북 트위터


진심처럼 보였다. “요즘 TV를 보면, 발연기를 하는 거지 같은 XX들이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 찍지 마! 너희들은 연기자가 아니야! 배우가 아니라고!” 연기 못하는 연기자를 비판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박신양이라면 이 ‘자격 미달’의 배우들에게 특히 더 분개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코미디 클립이 그랬듯, 이를 패러디한 tvN [배우학교] 티저에서도 성난 얼굴로 포효하던 박신양은 금세 산뜻한 미소로 안면을 바꾸며 말한다. “감정이 좀, 느껴지시나요? 이게 연기죠.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못하지만. 헤헷.”

예능일 줄 알았다. 부족한 연기력으로 악명이 높거나, 코미디만 해왔거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학생들을 박신양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렛처 교수(J.K. 시몬스)처럼 목청 높여 다그치고 혹독하게 굴리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리얼 버라이어티, 진짜 연기자! 수업을 시작하기 전, 굉장히 힘들 테니까 집에 가고 싶으면 지금 가도 좋다는 경고 역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냥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미 잡힌 ‘스케줄’로 촬영이 시작되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등을 보일 연예인이 있을 리가. 그러나 “나는 이게 연기 수업이라고 생각해. 연기 수업 쇼가 아니고”라고 잘라 말한 박신양은 ‘왜 연기를 배우려고 하는가, 연기는 무엇이고 연기자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출연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만한, 아니 그냥 우주의 먼지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잔머리는 통하지 않는다. 쉽게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쉽게 놓아주지도 않는다. 박신양은 허튼소리 한마디 없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다시 묻는다. 상처받은 기억으로 눈물을 보인 남태현도, 이런저런 ‘드립’을 시도한 유병재도, 배우로서의 매너리즘에 대해 고백한 이원종조차도 곧바로 다음 질문의 벽에 가로막혔다. 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얼마나 하고 싶어요? 왜 진심으로 안 느껴지죠? 일반적인 예능의 장 안에서라면 충분히 웃기거나 감동 코드로 쓰여 방송 분량을 뽑고도 남을 만한 상황에서도 박신양은 예의 엄격한 표정으로 “촬영을 하지 말고 우리를 보고 얘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공적인 관계에서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암묵적으로 합의된 ‘적당선’을 지키며 이루어지지만, [배우학교]의 박신양은 그 룰 위에 연기를 올려놓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팽팽한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그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등을 델 것처럼 뜨거운 난로 앞에 앉아 가슴 졸이던 남태현의 사정이나,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박신양에게 손을 꼭 붙들려 양호실 침대에 눕혀지는 유병재의 모습 등이 기묘한 재미를 만들어낼 줄은 박신양도 몰랐겠지만.


그래서 [배우학교]는 예측을 벗어나버린 쇼와, 쇼가 아니라 ‘기적’을 만들고 싶어 하는 박신양의 연기 수업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족구를 하다가 갑자기 공을 연기해보라거나,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몸으로 표현해보라는 지시는 엉뚱한 슬랩스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연기로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해 끝까지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기 위해 박신양은 오히려 학생 자신보다도 더 끈기를 갖고 집중력을 발휘하며 질문하고 독려한다.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tvN [스타 특강쇼]를 비롯해 박신양이 말해온 연기에 대한 조언은 지극히 평범한 원론에 가깝다. 그러나 2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발성 연습을 하는 것은 극기에 가까운 노력이다. “몸의 트레이닝을 매일매일 하지 않고서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지론처럼, 박신양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 중 한결같이 회자되는 것은 그의 지독할 정도의 성실성이다. SBS [싸인]에서 법의관 윤지훈 역을 연기하기 위해 그가 법의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수차례 부검을 참관하고 그들의 가족까지 만난 뒤 A4 160장에 달하는 일지를 감독에게 전했다는 이야기는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지난 1월, 박신양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우학교] 출연을 알리며 “배우가 어떤 훈련을 해야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는지 말하거나, 알려주거나, 배우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연기를 배우면, 분명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라고 썼다. 어색한 연기 때문에 ‘로봇’이라 불렸고 스스로도 전혀 재능이 없다고 여겨 풀 죽어 있던 장수원이, 수업이 거듭될수록 여전히 미숙하나마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바뀌어가는 모습에 약간의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은 “분명히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박신양의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믿음 또한 어쩌면 박신양이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진심을 연기하는 연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우학교]에서 박신양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연기라 해도, 그 연기가 살아 있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CREDIT 글 | 최지은
사진 | tvN
교정 |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