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의 신곡이 나왔다.

2015.12.31 페이스북 트위터


언니네 이발관의 새로운 싱글 [혼자 추는 춤]이 나왔다. 2008년 여름에 선보인 다섯 번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 이후로 무려 7년 만의 새로운 음악이다. 밴드는 5집 이후의 새 앨범 작업을 2010년 5월에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새롭거나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앨범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과작과 완벽주의의 아이콘에게도 4년 이상의 공백은 초유의 상황이었고, 지루함을 한꺼번에 갚으려는 듯, 2015년 6월 1일 [서울의 달], 2015년 9월 9일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몸을 움직여]라는 앨범을 발표한다는 계획이 나왔다. 물론 두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밴드는 처음으로 ‘혼자 추는 춤’과 ‘애도’ 2곡이 담긴 싱글을 냈다.

이석원이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언니네 이발관은 앨범 단위의 창작을 최우선으로 삼는 밴드다. 이는 언니네 이발관이 시작될 때부터 지향했고 실천했던 것처럼, 밴드는 자신만의 사운드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의 연장선이다. 심지어 앨범 자체의 완결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는 ‘트랙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라는, 어딘가 촌스럽지만, 음악 듣기의 현실 탓에 따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감상의 가이드를 제시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싱글이 어떤 타협의 결과는 아니다. 이들은 6집을 좋은 싱글 모음으로 만들자는 의도로 시작했기에, 앨범 전체의 작업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두 곡을 먼저 발표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

7년 동안 추려내고 다듬은 노래일 테니 좋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을지 보자는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다. 어느 쪽에 서더라도 2곡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몇 가지 힌트를 통하여 ‘댄서블’하다고 짐작할 수 있던 사운드는 흔히 춤출 수 있다고 여겨지는 전자음이나 빠른 박자에 기대지 않는다. 꾸준히 시도했던 키보드의 운용은 ‘애도’에서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정치하다. ‘혼자 추는 춤’은 지금 이 순간의 한국에서 어느 예술가가 느끼는 바를 진술하는 가사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 덕분에 제목까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노래의 의도와 정서를 전적으로 대변하지는 않는다. ‘혼자 추는 춤’이라는 제목은 이 노래의 지향점을 담백하고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이능룡의 기타는 기타 팝에 맞춰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몸을 흔들어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흔히 꼽는 언니네 이발관의 최고점은 [후일담]과 [가장 보통의 존재]다. 두 앨범이 훌륭한 이유는 특정한 기준 없이 그냥 좋아서가 아니라, 당시 이석원의 이상과 전망에 가장 근접한 결과물을 현실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팀을 좋아하고, 그들의 다른 앨범 또한 사랑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들의 모든 앨범에서 열렬한 음악 감상자이자 성실한 창작자로서 이석원의 지향점을 공감했고, 때때로 거기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의 음악이 최선의 결과임을 알았다. 요컨대 이석원이 때때로 자신감으로 혹은 자괴로 드러내듯이, 언니네 이발관은 어제의 나보다 낫고, 오늘의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사운드를 찾는 일로 20년을 보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싱글이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올려놓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이들의 빼어났던 순간과 비슷한 반짝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5년을 기점으로 인디 20년을 말한 올해, 싱글을 통해서라도 그 반짝임을 본 것은 다행이다. 20년 동안 쌓인 토양 위에서 새롭게 피어난 음악가들을 발견하는 신선함도 즐겁지만, 과거 이석원의 거짓말로 시작된 밴드가 농담처럼 등장하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는 경험은 다시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각각의 세대에게 단 한 번,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앨범이 나오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앨범이 나오면 우리는 또 좋네 별로네 떠들 것이다. 우리가 늘 하는 일 아닙니까? 그렇죠?
CREDIT 글 | 서성덕(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