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가 노래로 말하는 2015년 성장기

2015.12.14 페이스북 트위터
최근 지코의 위상은 다이나믹 듀오가 자신들의 새 앨범에서 지코가 참여한 ‘야유회’를 설명하면서 남긴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지금 가장 날이 서 있고 감각이 좋은 아티스트.’ 그저 작업을 도와준 후배를 칭찬하는 말에 그칠 수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이제 지코를 다루면서 아이돌/힙합 이분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지코의 지난 1년은 자신을 ‘랩 잘하는 아이돌’ 혹은 ‘아이돌로 활동하며 그만큼 인기 있는 래퍼’라는 예외적 존재 이상으로 만든 시간이다. 그 시간은 쉬지 않고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때로는 참여곡으로 내놓은 20여 개의 노래로 남았다. 그중 네 곡의 노래를 통해 지코의 놀라운 여정을 기록했다.




‘말해 Yes or No’, 2015년의 펀치 라인
‘말해 Yes or No’는 10월에 발표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말해 Yes or No’라는 외침에 대한 기억은 훨씬 오래됐다. 그는 올해 2월 Mnet [언프리티 랩스타 1]의 첫 번째 트랙 프로듀서로 등장해 육지담의 ‘밤샜지’에 비트를 만들었고, Mnet [쇼 미 더 머니 4]에서는 프로듀서 공연에서 자신의 버전의 ‘Yes or No’를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음원으로서의 ‘Yes or No’가 발표 직후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지코가 리얼리티 쇼를 기반으로 힙합신 안에서 쌓아온 토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팔로알토가 [쇼 미 더 머니 4]에 지코와 함께 등장하고, 이후 ‘거북선’이 히트하기까지의 순간은 모두 이 노래의 비트가 등장하던 때와 한 줄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빠르게 등장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요즘의 음악계에서, 지코는 마치 구전되듯 천천히 오래도록 퍼진 한 줄의 펀치 라인으로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어 나갔다.


‘겁’, 드라마틱한 성장기 
지코가 [쇼 미 더 머니 4]의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로 등장했을 때, 쇼 안에서 그를 설명하는 말은 ‘영 블러드 프로듀서’였다. 대중에게 래퍼이자 아이돌이라는 위치로 상징되던 지코에게 ‘영 블러드 프로듀서’는 수여 받은 훈장이 아니라 증명해야 하는 가치에 가까웠다. 그리고 송민호의 ‘겁’은 좋은 곡을 만들었다거나,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아냈다는 것 이상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겁’ 한 곡을 통해 자신과 송민호가 언더 래퍼 시절부터 쌓아온 우정을 바탕으로 송민호의 성장기를 드라마틱한 전개로 그려냈고, 이 절절한 곡에 맞춘 슈퍼스타 태양의 보컬은 빅뱅에서도, 그의 솔로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쇼 미 더 머니 4]의 붐이 지난 뒤에도 ‘겁’은 올해 힙합신에서 주목받은 곡 중 하나로 남았고, 지코는 아이돌이자 래퍼이며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증명했다.


‘Boys and Girls’, 매끈하게 뽑아내는 히트곡
‘말해 Yes or No’와 ‘겁’을 지나며 지코는 발표하는 음원마다 주목받는 대중음악 산업의 ‘영 블러드’가 됐다. 그 순간 내놓은 ‘Boys and Girls’는 이제 ‘블락비의 지코’나 ‘랩 잘하는 아이돌’이 아니라 명확하게 지코라는 개인의 브랜드 아래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지코는 ‘Boys and Girls’를 비롯한 3곡의 싱글을 마치 자신에 대한 간결한 포트폴리오처럼 내놓았다. ‘날’은 공격적 자기확신을 담아내면서 일반적인 장르성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말해 Yes or No’는 자신이 지금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소재 삼아 그것을 사람들이 흥겹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Boys and Girls’는 대중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사운드를 구사하면서 피처링으로 보컬리스트 바빌론을 소개하며, 동시에 힙합을 매개로 성적인 표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아이돌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3곡은 굳이 새로운 지평을 넓히지 않는다. 대신 그 영역을 아주 빠르게 파고들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유창한 아티스트인지 밝힌다. 그는 이제 매끈한 히트곡에서 자신의 색깔을 남기고, 동시에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하는 위치가 됐다.


‘VENI VIDI VICI’, 승리의 선언
지코는 2015년 내내 좋은 곡들을 발표했고, 연속된 흥행과 함께 스타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내놓은 새로운 3곡은 강렬한 승리의 선언이었다. ‘VENI VIDI VICI’의 간결한 비트와 올드스쿨 랩은 흔히 볼 수 있는 가사들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말하거나, 비유적인 성공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현재를 시원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이 구체성은 언더 힙합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주류 가요계에서는 낯선, 은근한 중간을 지난다. 한편 그것을 전달하는 각종 비주얼과 뮤직비디오는 주류의 그것답게 빈틈없이 매끈하다. 지코는 자신의 근본적인 음악적 배경을 납득시킬 수 있게 되었고, 힙합은 그만큼 대중적인 장르가 되었다. 하지만 주류 아티스트에게 가능한 완성도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으로 스스로의 위치 또한 확실히 한다. 최근 인디 아티스트들이 음악 외적 부분에서도 완성도를 추구하는 경향은 국제적인 것이지만, 지코의 응답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미묘한 무엇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지코에게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이돌, 힙합, 음원차트와 같은 대중음악의 키워드 안에서, 지코는 자신의 방식으로 다 승리했다.
CREDIT 글 | 서성덕(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