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2015.10.26 페이스북 트위터



“정명훈 예술감독이 어느 행사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조성진 군을 처음 보고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대단한 소리를 가진 아이를 찾아냈다’라고 흥분해서 말씀하셨고 그 직후 곧장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를 추진했다.”

전 서울시향 직원이었던 P씨가 얼마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첫인상에 대해 했던 말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2009년 4월 어느 시상식에서 조성진이 쇼팽을 연주하는 것을 본 정명훈 지휘자가 곧장 서울시향과의 협연 스케줄을 짠 것이었다. 그렇게 조성진은 중학교 3학년의 나이에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의 협연으로 자선공연에서 쇼팽과 베토벤을 연주했고, 이어서 서울시향은 연말에 예정된 정기 공연에서 마땅한 협연자를 구하지 못했던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을 오직 그의 가능성만 보고 협연자로 무대에 올렸다. 이벤트성 행사에 등장하는 것과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 무대에 정식 협연자로 오르는 것은 성격이나 위상이 전혀 다르다. 정명훈 예술감독은 해외 공연에선 보다 경험이 많은 김선욱을 대동했지만, 국내 공연에선 조성진을 주로 기용하면서 고정 협연자가 되도록 했다.

이후 조성진은 공연을 볼 때마다 성큼성큼 자라 있었다. 조성진이 협연을 시작했을 때의 서울시향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어느 한 단계를 뛰어넘기 전 몹시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때문에 협주곡을 연주할 때 독주자를 받쳐주는 파트너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조성진의 아우라는 기억에 몹시 강렬하게 남았을 정도였다. 이런 경험 속에서 조성진은 해외 콩쿠르의 문을 꾸준히 두들겼다. 4년 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손열음과 함께 출전해 3위를 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경험 부족의 티가 어느 정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선 무대에서 연주한 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완성이 머지않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작년의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는 실황중계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조성진의 우승을 점칠 수밖에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특히 결선 무대의 브람스 피아노4중주 G단조 Op.25는 실내악이지만 대편성 오케스트라 곡을 듣는 것처럼 스케일이 크고 어렵다 보니 단연코 피아노의 역할이 절대적이고, 조성진의 연주는 너무나 뛰어났다. 그러나 결과는 3위였다.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에게 해외의 유명 콩쿠르는 중요한 이벤트다. 아시아 출신 연주자에게 평가가 박한 원초적인 인종차별 문제도 있지만, 보다 현실적으로는 그 연주자가 성공적인 명성을 쌓을 만큼의 국내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자국에 안정된 시장이 없고, 국제적인 음악 행사에 거액의 후원금을 선뜻 내밀어 적극적인 스폰서가 되어줄 대기업과 연계되기도 어렵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해외 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거의 유일한 길인데, 그마저도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끌어내지 못하면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콩쿠르의 문을 계속 두드릴 수밖에 없다. 콩쿠르가 어느 나라 연주자보다 중요하지만, 정작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나간다 해도 연주력과 별개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쉽지 않다. 비록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 참가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쇼팽 콩쿠르는 역대 수상자의 면면을 봐도 현재까지 거장으로 대접받으며 현역으로 활발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많다. 참가자의 신분일 때 거의 완성형 피아니스트들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조성진은 이런 세계 최고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이제 자신과의 싸움만이 남은 진정한 연주자의 출발선에 선 것을 공인받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성진의 가장 큰 장점은 ‘강철멘탈’이 아닌가 싶다. 그 어떤 무대에서도 위축되거나 긴장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구상한 대로 다 풀어낸다. 심지어 사소한 미스터치마저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루빈스타인 콩쿠르의) 리스트 같은 경우도 상당히 길고 난해한 곡인데 초지일관 자기 페이스대로 밀고 가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실내악을 할 때는 과시하지 않고 앙상블에 녹아들어갈 줄 안다. 사실상 피아니즘에 있어서는 단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완성형 연주자다.” 현재 독일에 체류하고 있는 작곡가 N씨의 평은 조성진이 지금 어느 정도의 연주자인지 짐작하게 한다. 실력을 생각하면, 조성진이 지금 성취하고 주목받은 것은 오히려 너무 늦어 보이기까지 한다. 시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규모의 한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며 연습해온 본인의 부단한 노력에 재능을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의 지원, 그리고 운까지 더해지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 그리고 결과가 나온 뒤에야, 언론에서는 이를 ‘기적’이나 ‘쾌거’라는 말로 포장한다. 조성진의 우승 뒤에도 이것은 그리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한국에서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 또 한 명의 연주자가 시작한 여정에 동참하고 싶다면, 우선 11월 6일에 발매되는 조성진을 비롯한 쇼팽 콩쿠르 수상자의 기념 연주회 음반부터 들어보도록 하자.

* 도움 말씀을 주신 전 서울시향 직원 P님과 Y님, 그리고 작곡가 N님께 감사드립니다.

오경아
클래식 음악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는 만화가.
현재 봄툰에서 [마녀와 집사] 연재 중.

사진 제공. 쇼팽 콩쿠르 2015
교정. 김영진

CREDIT 글 | 오경아(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