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미나즈, 잊혀진 길의 새로운 개척자

2015.06.25 페이스북 트위터



현재 흑인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은 여성 래퍼의 존재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니키 미나즈가 있다. 그는 2010년 ‘Your Love’로 빌보드 랩 차트 정상에 올랐고, 데뷔 앨범 [Pink Friday]는 100만장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두 가지 모두 2003년의 릴 킴 이후 여성 래퍼로 최초의 일이고, 그 해 여름에는 자신이 피처링한 7곡을 동시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렸다. 게다가 가을에는 카니예 웨스트의 ‘Monster’에서 제이-지, 릭 로스를 제치고 가장 훌륭한 랩을 선보이며, 입지를 단단히 만들었다. 이후 니키 미나즈는 빌보드 흑인음악 차트 상위권을 그가 참여한 곡과 그렇지 않은 곡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차트 성적을 거둔 여성 래퍼가 됐고, 그로부터 ‘Fancy’의 이기 아질리아를 비롯해 아젤리아 뱅크스, 엔젤 헤이즈 등 여성 래퍼들이 이어졌다.

요컨대 지난 1년은 여성 래퍼가 힙합 음악계의 최전선에 돌아올 수 있는가 의심했던 사람들조차 희망을 가질법한 시간이었다. ‘2003년의 릴 킴 이후 최초’라는 표현은 니키 미나즈의 성과를 포장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힙합이 대중음악으로 성장한 지난 10년 동안 ‘여성 래퍼’의 존재는 사실상 대중적으로 없는 것과 같았다. 단적인 예로 2003년 그래미는 랩 퍼포먼스 부문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했지만, 미시 엘리엇이 2년간 여성 부문을 수상한 기록을 남긴 뒤 이 구분은 사라졌다. 시상식 운영자들은 폐지 이유를 충분한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 탓이라고 밝혔다. 솔트-앤-페파, 폭시 브라운, 로린 힐, 미시 엘리엇이 호령하던 시대 이후의 이 갑작스런 단절은 공교롭게도 힙합의 여성 비하가 광범위하게 대중화된 시기와 맞물린다. 힙합은 음악산업의 중추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기존의 메이저 음악 자본과 백인 중심의 소비 계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백인에게 익숙한 흑인 여성의 역할 중 갱스터가 없음은 당연하다. 대신 남자를 유혹하고 돈을 쫓는 ‘Bitch’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퀸 라티파 또는 그 후예들이 토크쇼 진행자가 될 수는 있어도 ‘Ladies First’를 외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니키 미나즈가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결합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이후에 등장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힙합이 더 이상 특정한 인종이나 계층의 문화를 넘어설 때, 니키 미나즈는 그 사이에서 ‘Super Bass’나 ‘Starships’처럼 사실상 팝에 가까운 사운드로 대중적인 영향을 넓혀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여러 얼터 에고 중 하나로 내세우는 ‘하라주쿠 바비’에게 맡길 수 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악한 일면인 ‘로만 졸란스키’의 비중을 늘려가며, 힙합이라는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하고 래퍼로서의 능력도 보여준다. ‘Monster’에서 ‘로만 졸란스키’가 랩 한 구절에 5만 불을 받지만, 앨범은 아직 없다고 ‘하라주쿠 바비’를 받아 치는 순간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니키 미나즈는 힙합의 영역으로 넓어지는 변화 속에서 여성 래퍼로 자리 잡았고, 이기 아질리아를 포함한 신진 여성 래퍼들이 대중 속에 자리 잡는 경로를 개척했다. 심지어 그 영향은 한국의 여성 래퍼의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 래퍼의 부상이라는 현상은 새롭다기보다 비로소 제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힙합 뮤지션의 상업적 가치는 재발견되었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뮤지션의 외모가 음악적 재능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상황은 여전하겠지만, 시장 자체의 한계를 결정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니키 미나즈나 이기 아질리아를 좋아하지 않는 대신, 그 대안으로 다른 여성 래퍼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는 이미 충분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다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중요한 시기다.

글.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


CREDIT 글 |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