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러블리즈‧여자친구, 지금은 소녀의 시대

2015.02.06 페이스북 트위터



작년 이맘때는 섹시 콘셉트의 수위가 화제였다. 신인들은 이렇게라도 화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인 듯했다. 올해의 풍경은 당시의 이야기가 무색해진다. 에이핑크와 러블리즈가 이름 알리는 데 급급해야 할 소규모 기획사의 신인은 아니다. 그러나 무명이었다 해도 좋을 여자친구의 선전은 주목할 만하다. 작년부터 신인 걸 그룹들은 여러모로 이색적인 시도들을 하고 있다. 걸즈힙합을 선보인 소나무, 클럽 사운드와 록의 화려함을 결합한 EDM 위주의 포텐, 레트로 사운드 보컬 그룹과 아이돌 사이를 영민하게 오가는 마마무, 극장형 걸 그룹 비비디바 등이 그렇다. 섹시 콘셉트가 아니어도, 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지금은 걸 그룹 다양성의 시대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개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주머니 속 송곳이 된 것은 결국 러블리즈와 여자친구다. 청순계는 아니지만 귀여운 소녀 이미지의 걸 그룹도 평소보다 완성도가 높은 베리굿, 라붐 등으로 나타났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끼어 있겠으나, 지난해 에이핑크의 도약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이는 분명 소녀 콘셉트의 승리이다. 지금의 구도는 다양성이 시도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 화사한 소녀들이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함이 옳다.

어디선가 보던 모습이다. 2007년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가 삼파전을 벌이던 시기이다. 비록 시장은 일명 ‘후크송’이란 형식과 복고풍으로 무장한 원더걸스의 ‘Tell Me’가 휩쓸었지만, 세 팀의 초기 모습은 유사했다. ‘Rock U’, ‘Honey’를 부르던 카라, ‘다시 만난 세계’와 ‘Kissing You’, ‘소녀시대’를 부르던 소녀시대, 그리고 원더걸스마저 데뷔 당시는 ‘Irony’에서 스쿨걸 룩을 입고 ‘요즘 여자아이의 사랑’을 표현했다. 유행은 돌고 돈다. S.E.S.와 핑클이 소녀 콘셉트로 데뷔한 후, 강렬한 이미지의 베이비복스, 애절한 호소력을 지닌 씨야가 뒤를 이었다. 카라와 소녀시대의 ‘소녀 시절’ 이후 우리에겐 포미닛과 2NE1이 있었으며, 얼마쯤 지나 음악적 성숙의 대명사인 양 훵크 사운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소녀의 시대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고집한 에이핑크는 너무 늦은 게 아니라 너무 일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다음에 다시 강한 여성 이미지가 돌아온다면, 소나무도 조금 일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유행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러블리즈가 빛바랜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마냥 행복한 소녀의 연애가 아니라 아련하고 애타는 마음이다. 그 지향점이 일본의 고전 아이돌, 혹은 강수지에 있음을 시사한다. 여자친구가 소녀시대와 에이핑크를 참조한 것 역시 단지 성공 사례를 베낀 것이라기보다 그 안에 있는 걸 그룹의 과거를 가져오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걸 그룹의 다양화도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 세계가 하나의 끝에 도달하면서 지향점을 잃은 혼돈 상태였다고 말이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크레용팝 이후 프리츠 등 일본 아이돌을 참조한 경우가 부쩍 많아진 것도 ‘돌아갈 곳’을 찾는 여정으로 이해된다. 오래전의 일기장을 펼쳐본 걸 그룹들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소녀였다.

여성의 매력이 하늘하늘한 ‘여성미’에만 있진 않을 터다. 원더걸스와 ‘삼촌팬’ 논란이 그러했듯 여자친구의 짧은 체육복과 뜀틀이 소녀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욕망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여성학과 사회심리학이 다뤄야 할 영역. 청순한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띄운 채 막연한 꿈과 고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녀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단 하나의 상품으로 구성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이미지이다. 일본의 고전 아이돌들도, 한국의 ‘포카리스웨트형 미인’도, 바로 그러한 여성상을 고전의 영역으로 취하고 있다. 현실에서 만나는 이상적 인간형을 보여주는 아이돌이란 장르에서도, 소녀야말로 그 출발점인 것이다.

두 번의 사이클이 돌았다. 처음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이돌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 2000년대 중반 같은 공백기가 없었다. ‘아이돌은 끝났다’, ‘K-POP은 끝났다’는 말은 최소 5년째 분기마다 들려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돌 걸 그룹은 끊김 없이 사이클을 완주했고,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소녀의 사랑스러움은 아이돌의 원동력이 된다. 그것이 충분한 추진력을 제공한다면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새로운 아이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과거를 베껴 오는 것만으로 버틸 수 있겠냐는 의문도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인 레퍼런스 동원은 ‘소녀’라는 ‘위대한 고전’의 유행이 지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2막이 화려했던 걸 그룹의 무대는 이제 소녀들의 화사함으로 3막을 열었다.

글. 미묘(대중음악평론가)
교정. 김영진


CREDIT 글 | 미묘(대중음악평론가)